"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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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by grabthecloud 2021.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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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친절이 오염된 세계에 단호히 맞설 거예요!

195/ 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198/ “칙칙해지지 마, 무슨 일이 생겨도.”

215/ 선한 규칙도, 다른 것보다 위에 두는 가치도 없이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 특유의 탁함을 은영은 견디기 어려웠다.

216/ 내가 너를 싫어하는 것은 네가 계속 나쁜 선택을 하기 때문이지 네가 속한 그 어떤 집단 때문도 아니야. 이 경멸은 아주 개인적인 경멸이야. 바깥으로 번지지 않고 콕 집어 너를 타깃으로 하는 그런 넌더리야. 그 어떤 오해도 다른 맥락도 끼어들 필요 없이 누군가를 헤치는 너의 행동 때문에 네가 싫어.

219/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거절도 할 줄 아셔야 해요. 과도한 업무도 번거로운 마음도 거절할 줄 모르면 제가 아무리 털어 봤자 또 쌓일 거예요. 노, 하고 단호하게 속으로라도 해 보세요.

222/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238-9/ 학생들은 대흥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대흥의 기대보다 자주 하곤 했다. 이를테면 ‘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선거에 뽑히나요? 왜 좋은 방향으로 일어났던 변화들이 무산되나요? 왜 역사는 역류 없이 흐르지 못하나요?’ 그런 질문들이었다. (…) 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254-255/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건 나중에, 아이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최소한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나이가 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고 인표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해치려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가득 만날 테니까 지금은 손잡고 다니게 두고 싶었다.
(...) “더러워서요. 더러워서 때렸어요.”
더러운 게 뭔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게 교사로서 참담했다.

268/ “그러니까 여자를 만나도 좀!” (...)
“네가 안 만나 줬잖아!”

270/ 다시 쫓아온 인표가 뒤에서 가만 은영을 안았다. 두 손바닥으로 은영의 팔꿈치를 받쳤다. (...) 수전증이 있는 은영이 산수유 꽃에 좀처럼 카메라 초점을 맞추지 못할 때, 마치 인간 삼각대처럼 그렇게 팔을 잡아 줬었다. 인표의 환한 에너지가, 남쪽 나라의 꿀 같은 에너지가 흘러들었다.

271/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 함녀 될 거예요. (...)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277/ 인표는 은영의 차가운 손을 잡았고, 곧 두 손으로 그 손을 감쌌다. 30년쯤 깎아 왔을 텐데도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못 깎은 손톱에 입을 맞추고 은영을 끌어당겨 안았다. 엉킨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었고 이마에도 입을 맞췄다.
“엄청 차근차근 추근거리네.”

278/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279/ 그저 충전이 잘된 날, 완전히 차오른 은영의 얼굴을 바라보다 잠드는 게 좋았다. 그 빛나는 얼굴이 인표의 수면등이었다.

284/ 김혼비 에세이스트 추천의 글 中
눈에 띄는 정보와 직감을 바탕으로 한 최소한의 이해만으로도 누군가를 돕고 구하고 싸운다. 마치 이해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듯이. 그러니 이해받으려고 노력할 필요 없이 그저 너의 존재만으로도 너를 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듯이. ‘그냥’이라는 이 쿨한 이해의 생략은 나를 늘 걷잡을 수 없이 뭉클하게 만든다. 안은영과 그 밖의 인물들이 보이는 선량한 ‘그냥’ 앞에서 이제껏 ‘이해’라는 포장지로 감싸 쥐어 있었던 내 일련의 계산들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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