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산책과 연애> 유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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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산책과 연애> 유진목

by grabthecloud 2021.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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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유심히 살펴 걷지 않으면 금방 길을 잃을 단어들이 이 책에는 많이 있다.
나는 단어들을 여기저기 나열하고 그 문장을 따라 여러 번 걸었다. 그러면서 나 말고 다른 사람도 한 번쯤은 걸어봐도 좋을 길을 만들었다. 걸음 하나에 단어 하나를 놓으며 뒤에올 사람에게 표식을 남겼다.

28-29/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연애였다. 이런 문장을 쓰고 있으면 ‘살의’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저 마음속에 간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은 내가 속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속는다.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살의씩이나 느끼면서 자꾸 속는지 고약한 습성이다. 어쩌다 자꾸만 믿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믿는 사람이어서 속는 사람이 되었다.

31/ 나처럼 남자와만 연애를 해본 사람들은 아래의 목록에서 몇 개쯤은 공감할 것이다. 다들 어쩜. 하나같이. 똑같이. 거기서 거기.

42/ 나는 사람들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대로 나한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니? 자기는 가족이랑은 섹스를 안 한다니? 매사에 그럴 의도가 없었던 사람과 가족이랑은 섹스를 안 하는 남자를 처음부터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과 거리를 두고 되도록 멀리 있으면서 말을 섞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인간을 더 혐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58/ 그래도 시간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미래에 도착한다.
미래에 도착한 사람은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며 안도할 때 행복을 느낀다. 내가 여기에 도착했구나.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구나. 그 사람도 이제 내 곁에 없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또 어디에 도착할까. 그다음 미래는 좋은 것일까 아닐까. 그때 나는 혼자일까 아닐까.

63-64/ 사랑을 품은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에게 거의 매번 지고 만다. 사실이 그렇다. 사랑이 결여된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 속에 살아가게 내버려둔다. 사랑이 결여된 세계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 많이 반성한다. 사랑하는 자신과 사랑이 없는 세계를 반성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진단한다. 하지만 세계를 바꿀 힘은 있기도 하지만 없기도 하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힘이 넘친다. 사랑이 없는 사람의 정력적인 얼굴과 힘찬 걸음걸이를 우리는 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병들고 무기력한 사람이다.

68-69/ 살면서 결혼이라는 것을 이렇게나 필요한 것으로 만들어놓고서 누구는 할 수 있게 하고 누구는 할 수 없게 하다니? (...) 그러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건 왜지? 어째서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방식으로 결혼을 작동하게 하지? 인간이 존엄은 자본이 아니라서?

72-4/ 지네도 그렇지만 돌변하는 인간에게 나는 대단히 취약하다. (...) 그러니까 어쩐지 상대를 뭉개고 승리하는 기분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돌변하면 된다. 그러면 나를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말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이 모두 거짓이었다고 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마구 거짓말을 해대면 된다.
내가 선뜻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어느 정도는 상대가 돌변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 중에 최악의 그것밖에 모르는 것이니. (...)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 여겨서 그랬다면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증오해야 하는 것은 인간 희생양이 아니라 빈곤, 질병, 억압, 자연재해 같은 비인격적 대상”이라고 어니스트 배커는 <죽음의 부정>에 썼다.

75/ 증오는 불가피하지만 여기에 지성과 지식을 접목하면 파괴적 에너지를 창조적 행위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따라서 흘깃 스치는 것조차 괴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인간을 증오하는 것보다, ‘빈곤’과 ‘질병’과 ‘억압’과 ‘자연재해’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인간은 그런 면에서 쓸모가 있다. 무엇에?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101/ 좋은 일이 없는데 살아가는 사람. 다른 좋은 일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나는 다른 좋은 일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좋은 일이 나에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못난 사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좋은 일이 없는데 살아가는 사람. 다른 좋은 일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태어난 것을 원망하지 않는 사람. 부모를 미워하지 ㅇ낳는 사람. 못 가진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 가진 대로 나를 먹이고 나를 재우는 사람.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 하루의 끝에는 즐겨 하는 게 하나쯤 있는 사람. 무조건 혼자서 잘 있는 사람. 의존하지 않는 사람. 사랑은 필요하지 않은 사람. 아니, 사랑에 기대를 품지 않는 사람.

103/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삶이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야.

107/ 사랑하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모르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폭력이 된다. 아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면 허영이 된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으므로 이 모든 일을 알지 못한다.

110/ 말하자면 그중에 날씨는 인간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는 인간을 살게 한다. 그런 면에서 날씨는 많은 자비를 지녔다.

115/ 지구는 걸을 수 있는 곳과 걸을 수 없는 곳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이 걸어서 닿을 수 없는 곳에는 다른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인간은 그 사실을 잊고 산다. (...)
그들을 생각하면 슬프기만 하다. 그들은 자연이다. 사는 동안에 내가 아주 조금만 볼 수 있었던 것. 아주 조금만 보았으면서도 가장 충만했던 것. 무섭고 황홀해서 오래 견딜 수는 없던 것. 자연은 인간을 압도한다.

116/ 그래도 매일 기분에 조종당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는 있다. 하지만 잘되지 않는다. 기분은 나에 비해 강력하고 예측할 수 없다. 어느 날은 비가 와서 기분이 좋고 어느 날은 비가 와서 무력하다. (...) 어느 날은 화창한 날씨가 나를 활기차게 하고 어느 날은 화창해서 세상으로부터 돌아앉는다. 어느 날은 더워서 더러워지고 어느 날은 추워서 추해진다.

129/ 나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없어도 나 스스로 내가 행하는 삶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130/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고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대답할 수 없을 때 나는 쓰지 않는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는 것을 나는 양심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돕는 것은 책임과 양심이다. 책임과 양심은 질문으로부터 생겨난다.

책임과 양심은 그것을 가진 사람만이 겨우 분별하여 알아볼 수 있다.

131/ 고작 나 자신을 정당화하는 데 정신을 쏟지 말고. 내가 아닌 다른 것을 향해 생각을 나아가게 하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서 용기를 찾고. 내가 아닌 다른 것에 용기를 사용하고. 누구나 비겁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내것이 아닌 것은 쓰지 말고.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을 분별하고. 내가 아닌 것으로 불행하지 말고. 나인 것으로 행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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