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수필'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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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12

<연중무휴의 사랑> 임지은 p.32 우리는 우리만으로도 괜찮아야 한다는 믿음, 내가 끝내 망가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 같은 걸 지키느라 지독한 멀미를 앓긴 했지만, 그 믿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지켜냈고 그 와중에 나는 엉망인 마음이 어떤 건지 조금은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것 역시 누구나 갖게 되는 건 아니었다. p.47-48 내가 불안하고 두렵고 버겁단 이유로 효원을 다그치곤 했던 거나, 왜 나 같지 못하느냐며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경멸하던 것도. 나는 언니이자 효원의 예비 엄마처럼 굴었떤 게 틀림없고, 나 같은 언니를 두는 일은 어떤 일들을 자꾸 실패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 언니로 산다는 건 무얼까... p.49 한동안 효원은 늦은 밤 느닷없이 언니, 하고 말을 걸면서 글썽거렸다. 효원은 언제나 혼자.. 2022. 2. 4.
내 몫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학교에서 절대 똥 싸지 말아야지’ 이제 스무 살, 대학교 새내기가 된 나는 생각했다. 더럽지만 고결한 이 다짐은 어떤 남자의 추태로부터 비롯됐다. 그 남자는 순진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팔뚝을 가졌었다. ‘벌크업한 공명’이랄까. 나는 그를 짧은 시간동안 꽤 강렬하게 흠모했는데 어느 날 나의 사랑은 차게 식게 된다. 때는 2013년 3월 5일 D대 H관 J311호 수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OT는 출석 체크를 안 할 거란 약은 생각에 느긋하고 여유롭게 지각을 한 나는 유일하게 비어있는 맨 앞줄, 교수님 침이 직빵으로 튀는 자리에 앉았다. 지각인 건 알았지만 민망함은 어쩔 수가 없구나, 라고 생각하는데 내 민망함을 덜어줄 새로운 지각생이 도착했다. 훤칠한 그는 등장부터 시선을 압도했고, 몇 초 뒤 그가 유일.. 2020. 8. 15.
사건의 전말 / 영악한 나는 죽고 싶다고 할 때 살으라고 하는 무심함보다 '같이 죽을까, 그럴래?'라고 묻는 다정함이 더 좋아서 가끔 없는 계절을 데려왔다. -백가희, /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리진씨가 앞으로 잘 될 거라고 믿어요." "갑자기? 잘 하고 있으면서." "넌 할 수 있어." "엄마는 리진이 때문에 살지." "원체 긍정적이시잖아요?" “나는 자기가 밝아서 좋아.” / 혹시 했지만 역시다. 이번에도 기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는 잠시 침묵으로 그 순간을 일시정지시켰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쾌활해진다. 다시 가벼운 이야기를, 밝고 따듯하고 너무나 희망적인 이야기를, 한 치의 절망도 없는, 그래서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들숨과 날숨조차 거짓으로 긍정하고 낙관하는 자신이 정말 그지.. 2020. 8. 1.
혜정 그녀는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도대체 왜 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는 너무 신기해.” 그러게, 생각해보면 나도 참 신기하다. 내가 지금껏 겪은 일련의 어이없는 일들이. 하나씩 나열하자면 이상하게 웃음과 눈물이 함께 터지면서 해학과 한의 정서가 공존하는 ‘그런’ 상황들이. 그리고 나는 줄곧 그건 다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나도 모르는 나의 실수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이 혹은 그 상황이 나빴던 거야.” 그리고 차근차근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내 잘못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스무 살에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그녀도 나도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끔 소설에서는 병에 걸린 .. 2020. 6. 28.
연습 63년생 아빠는 많은 것이 어렵다. 복잡한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이 어렵고 딸에게 다정하게 말 거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가 어렵다. 여러 번을 알려줘도 같은 것을 또 다시 알려줘야 하는 것이, 점점 더 느리고 둔해지는 나이가, 아빠와 있을 때의 정적이 어렵다. 아빠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의 삶에서 낙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사실 나는 아빠를 잘 모른다. 그리고 아빠 역시 딸을 잘 모른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어느 정도냐면, 아빠는 내가 20살 때부터 6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존재를 몰랐다. 굳이 숨긴 것도 아닌데 졸업식에 와서야 '내 딸의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셨다. 친구들은 내가 아빠와 따로 사는 거 아니.. 2020. 6. 23.
자만추로의 회귀 ‘부먹/찍먹’에 버금가는 논쟁으로 ‘자만추/인만추’가 있다. 그리고 나는 두말 할 것 없이 자만추였다. 연애라는 목적의식이나 부담감, 의무감 없이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차곡차곡 유(有)의 상태로 나아가는 흐름이 좋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서 지켜 본 사람이라면 연인으로서의 모습 역시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인지 인만추의 정점에 있는 ‘소개팅’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누가 봐도 저 둘은 소개팅 중이란 걸 알 수 있는 그 어색한 기류가 거북했고, ‘파스타’라는 상징적 기호 역시 너무 진부했으며, 여러 소개팅 괴담이 배경지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성(혹은 동성) 둘이 태어나서 처음 만난 그날에 서로를 탐색하기 위해 질문 폭격을 던지고 함께하는 시간 내내 상대..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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