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에세이' 태그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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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15

연습 63년생 아빠는 많은 것이 어렵다. 복잡한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이 어렵고 딸에게 다정하게 말 거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가 어렵다. 여러 번을 알려줘도 같은 것을 또 다시 알려줘야 하는 것이, 점점 더 느리고 둔해지는 나이가, 아빠와 있을 때의 정적이 어렵다. 아빠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의 삶에서 낙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사실 나는 아빠를 잘 모른다. 그리고 아빠 역시 딸을 잘 모른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어느 정도냐면, 아빠는 내가 20살 때부터 6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존재를 몰랐다. 굳이 숨긴 것도 아닌데 졸업식에 와서야 '내 딸의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셨다. 친구들은 내가 아빠와 따로 사는 거 아니.. 2020. 6. 23.
시절인연(時節因緣) 안녕, 정민아. 나는 너고, 너는 나야. 나는 스물 아홉의 너지. 뜬금없이 오늘처럼 아무 날도 아닌 평범한 오월의 어느 날에, 아무 이유 없이 2년 전 스물 일곱의 나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너는 늘 너한테서 편지를 받아보고 싶어 했잖아. 갑작스럽지만 그걸 오늘 한 번 해보려고. 29세 현재의 근황부터 알려줄게. 나는 지금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어.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았고, 자유학년제라 애들은 ‘나만의 책 쓰기’ 수업 중이야. 그래서 요즘은 애들의 글을 읽고 있는데, 읽다보면 정말 많은 감정이 몰려 오고는 해.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개인의 서사를 읽어내려 가면서 14년 인생사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있으니 당연하지.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사건도 있고, 모르는 사건도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서 이.. 2020. 6. 19.
부부의 세계, 나는 알 수 없는 드라마를 보면서 도통 울지 않는 경애씨와 드라마를 보면서 대개 잘 우는 귀영씨와 함께 ‘부부의 세계’ 마지막 화를 시청했다. 이태오는 끝까지 찌질했고, 나는 그 찌질함이 준영이와 선우가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극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리든가, 라고 말하는 선우의 말이 너무나 속 시원했고, 너무나 진심처럼 들렸다. 식사를 마치고 준영이, 선우와 헤어진 이태오는 지나가는 트럭에 뛰어든다. 엄마는 그걸 보고 정말 마지막까지 자기 생각만 한다면서 이태오를 격하게 씹고 뜯었다. 다음 장면에서 걸어가던 선우의 뒤로 끔찍한 사고를 상상하게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태오에게 돌아간다. 이태오가 차에 치인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그리고 이태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에 치이지 않은 것을.. 2020. 6. 11.
자만추로의 회귀 ‘부먹/찍먹’에 버금가는 논쟁으로 ‘자만추/인만추’가 있다. 그리고 나는 두말 할 것 없이 자만추였다. 연애라는 목적의식이나 부담감, 의무감 없이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차곡차곡 유(有)의 상태로 나아가는 흐름이 좋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서 지켜 본 사람이라면 연인으로서의 모습 역시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인지 인만추의 정점에 있는 ‘소개팅’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누가 봐도 저 둘은 소개팅 중이란 걸 알 수 있는 그 어색한 기류가 거북했고, ‘파스타’라는 상징적 기호 역시 너무 진부했으며, 여러 소개팅 괴담이 배경지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성(혹은 동성) 둘이 태어나서 처음 만난 그날에 서로를 탐색하기 위해 질문 폭격을 던지고 함께하는 시간 내내 상대.. 2020. 6. 5.
첫사랑 ‘정민/형기’ 모니터에 떠오른 글자들을 보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맞아, 사람은 여기에 심장이 있는 거랬지. 내가 5학년까지 살아 있는 건 이렇게 심장이 뛰어준 덕분이었지. 근데 이건 좀 이상하다. 이렇게 빨리 뛰어도 되는 건가? 이건 그냥 뛰는 정도가 아닌데. 고장 난 것 같은데. 위험하다. 나 지금 엄청 표정 관리해야 하는데. 처음엔 고라니처럼 통, 통, 뛰다가 지금은 먹이를 발견한 치타처럼 뛰는 내 심장 소리가 지금 나한테만 들리는 거 맞나? 옷을 좀 두껍게 입을 걸 그랬나?! 이 정도면 내 옆이랑 앞뒤로 앉아 있는 애들한테까지도 들릴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건 절대 안 된다. 나랑 형기가 짝이라는 게, 그래서 한 달은 우리가 옆 자리에 꼭 붙어 앉을 거라는 게, 형기가 나를 ‘오징어’라고 부.. 2020. 5. 17.
꿈 속 얼굴 있잖아, 우리가 계획했던 여행을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만약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그 계절에 계획했던 여행을 예정대로 갔다면 말이야. 혹시 우리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 자려고 누우면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내 방 천장에는 별자리 대신 그런 생각들이 벅벅 그어지는데 좀처럼 멈출 수가 없네. 그렇게 잠들면 어김없이 난 네 꿈을 꿔. 정확히는 계획했던 대로 여행을 떠난 ‘우리’의 꿈이지. 꿈속에서 너는 마냥 행복한 얼굴인데 그 옆에서 나는 늘 무표정이야. 어딘가 슬픈 무표정. 근데 너는 내 얼굴이 왜 그런지 꿈속에서도 절대 묻지 않더라. 너는 그냥, 계속, 마냥, 즐거워. 나는 내내 생리통을 앓고 있는 표정이고. 나.. 202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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