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부부의 세계, 나는 알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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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간 마음

부부의 세계, 나는 알 수 없는

by grabthecloud 202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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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보면서 도통 울지 않는 경애씨와 드라마를 보면서 대개 잘 우는 귀영씨와 함께 ‘부부의 세계’ 마지막 화를 시청했다. 이태오는 끝까지 찌질했고, 나는 그 찌질함이 준영이와 선우가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극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리든가, 라고 말하는 선우의 말이 너무나 속 시원했고, 너무나 진심처럼 들렸다. 식사를 마치고 준영이, 선우와 헤어진 이태오는 지나가는 트럭에 뛰어든다. 엄마는 그걸 보고 정말 마지막까지 자기 생각만 한다면서 이태오를 격하게 씹고 뜯었다. 다음 장면에서 걸어가던 선우의 뒤로 끔찍한 사고를 상상하게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태오에게 돌아간다. 이태오가 차에 치인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그리고 이태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에 치이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 그를 안던 그녀의 얼굴에는 정말 많은 감정이 스친 듯 보였다. 나는 ‘저 이태오 새끼! 차에 치였어야 하는데!’, 라고 말하려고 엄마를 쳐다봤는데,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왜 그 장면을 보고 울었을까. 평소에도 잘 울지 않고 드라마를 보면서는 더더욱 울지 않는 씩씩한 경애씨가. 나는 당황해서 이태오 욕을 속으로 삼키고 조용히 드라마만 봤다. 그렇게 드라마의 마지막 화는 종결됐는데 엄마의 눈물은 나에게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며칠후에 나는 미제 사건 수사를 위해 저녁을 먹고서 엄마와 마주 앉았다.

 “엄마 그때 부부의 세계 마지막 화 볼 때 왜 우신 거예요?”

 “아… 그때? 그때 김희애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엄마는 너무 잘 알아. 너무 공감이 됐어.”

 “그 감정이 뭔데요?”

 “저 답답한 인간 콱 죽어버렸으면 싶다가도, 저 사람은 절대 죽으면 안 된다는 그런 마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저 불쌍한 인간 받아줄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그런 마음.”

 “… 이상한 마음이네요.”

 “이상한 마음이지. 괴로운 마음이고. 부부는 그런 거야, 딸. 엄마랑 아빠는 사랑이 아니라 의리로 사는 거야. 일종의 전우애?”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들려요.”

 

 결혼한 지 30년이 되어가는 부부의 세계란 무엇일까. 그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경애씨와 귀영씨는 중매로 만났다. 경애씨는 귀영씨의 속눈썹에 반했다고 했고, 귀영씨는 경애씨의 무엇에 반했는지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번 보지 않고서 양가 부모님의 허락 아래 결혼을 결정했고 슬하에 딸 둘을 두었다. 가장이 된 귀영씨는 밤낮없이 일했고 맏며느리가 된 경애씨는 고관절 수술로 입원한 시어머니를 도맡아 간호하며 울었다. 내가 우리 엄마 팬티도 한 번 빨아준 적이 없는데, 라고 숨죽여 말하면서. 나는 그 둘이서 말로 싸우는 것도 보았고, 몸으로 싸우는 것도 보았다. 술에 취한 귀영씨가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와 화해를 시도하는 것도 보았고, 저리 치우라며 돌아누운 경애씨의 화가 누그러지는 것도 보았다. 싸우고 난 뒤 어떤 날은 경애씨가, 어떤 날은 귀영씨가 집을 나가기도 했고, 약속한 듯 그 다음 날이면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전셋방으로 시작한 둘이서 함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귀영씨가 옆집 아저씨와 시비가 붙었을 때 경애씨가 황소처럼 치고 나가 옆집 남편을 들이받았다고 들었고, 경애씨의 친정이 어려울 때 막내 사위인 귀영씨가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 도왔다고 들었다. 경애씨와 귀영씨는 가끔 팔짱을 끼고 나란히 걷고 계단이 나오면 귀영씨가 먼저 올라 뒷짐지듯 뒤에 오는 경애씨에게 손을 내민다. 경애씨는 그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둘이서 함께 계단을 오른다. 서로에게 서로가 내 새끼의 아빠고 엄마인 사람.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내 자식을 사랑해주는 사람. 때로는 저런 웬수가 있나, 싶게 꼴 보기 싫다가도 돌아서면 불쌍하고 가여워 눈물 나는 사람. 이번 생의 적군이자 아군. 때로는 나를 죽고 싶게 하는 유일한 내 편. 나는 알지 못하는 부부의 세계에는 사랑도 있고 우정도 있고 증오도 있고 의리도 있고 절망도 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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