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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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간 마음

첫사랑

by grabthecloud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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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형기’

 

 모니터에 떠오른 글자들을 보자마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맞아, 사람은 여기에 심장이 있는 거랬지. 내가 5학년까지 살아 있는 건 이렇게 심장이 뛰어준 덕분이었지. 근데 이건 좀 이상하다. 이렇게 빨리 뛰어도 되는 건가? 이건 그냥 뛰는 정도가 아닌데. 고장 난 것 같은데. 위험하다. 나 지금 엄청 표정 관리해야 하는데. 처음엔 고라니처럼 통, 통, 뛰다가 지금은 먹이를 발견한 치타처럼 뛰는 내 심장 소리가 지금 나한테만 들리는 거 맞나? 옷을 좀 두껍게 입을 걸 그랬나?! 이 정도면 내 옆이랑 앞뒤로 앉아 있는 애들한테까지도 들릴 것 같아서 불안하다. 그건 절대 안 된다. 나랑 형기가 짝이라는 게, 그래서 한 달은 우리가 옆 자리에 꼭 붙어 앉을 거라는 게, 형기가 나를 ‘오징어’라고 부르면서 장난을 치면 나는 너무 좋지만 세상 싫은 척하면서 인상을 쓸 거라는 게, 샤프랑 지우개를 빌리고 색연필을 나눠 쓰고 같이 딱풀로 거미줄도 만들 거라는 게, 나는 오늘 아침에 소시지 먹고 왔다면서 급식에 나온 통통한 소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게, 나랑 형기가 짝이 되어서 이 모든 걸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게 알려지면 나는 너무 부끄러우니까.

 

 “여러분 모니터에 6월 짝꿍표 보이죠? 이제 이대로 자리를 옮겨주세요. 다른 반에 피해가 가지 않게 사뿐~ 사뿐~ 발뒤꿈치 들고서! 조용히 움직여요~”

 

 나는 괜히 지금 짝꿍한테 네 짝은 누구냐고, 나는 이제 김형기랑 짝이라고, 김형기 진! 짜! 싫다고, 6월은 지옥 같을 거라고 말하면서 짐을 싼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거짓말이다. 사실 나는 새로운 네 짝이 누구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 나는 이제 김형기랑 짝이라고, 김형기 진! 짜! 좋다고, 6월은 천국 같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살짝 보니 형기도 짐을 챙기고 있다. 나랑 짝이 돼서 형기는 기분이 어떨까? 형기도 좋을까? 좋았으면 좋겠다. 형기도 나랑 짝이라서 좋았으면 좋겠고, 사실은 형기도 나를 좋아하고 있으면 좋겠다. 4반에 토끼처럼 생긴 김지연이라는 애 말고, 너랑 같은 반에 이제 너의 짝꿍까지 된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네 얼굴에 점이 몇 개 있는지 알아버린 바로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나는 형기 얼굴에 점이 몇 개 있는지 알고 있다. 이상하게 형기의 눈을 오래 못 보겠어서, 그 애가 날 보면 자꾸 아침에 똥을 쌌는데도 배랑 가슴 그 어딘가가 아파서, 형기랑 얘기할 때는 얼굴에 있는 점을 봤다. 다행인 건지 형기는 얼굴에 점이 많다. 그리고 내가 형기랑 사귀면 햇살문구 옆에서 파는 400원짜리 피카츄를 야금야금 먹은 다음에 너는 네 얼굴에 점이 몇 개인지 아냐고 꼭 물어볼 테다. 나는 안다고, 내가 맞추면 내 소원을 들어달라고, 용기를 내어 말할 테다. 무슨 소원을 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형기가 온다.

 

“오징어! 우리 이제 짝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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