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써 내려간 마음' 카테고리의 글 목록 (2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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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간 마음20

1과 2 엄마는 아직도 나를 가끔 애기라고 부른다. 나 같은 팔척장신의 애기는 주몽설화에나 나온다는 것을 알지만 엄마들에게 자식이란 나이에 상관없이 영원히 애기라는 것을 알기에 굳이 정정은 하지 않는다. 한동안 우리 엄마는 그 애기 걱정을 했다. 내가 익숙하고 오래된 2의 세계와 결별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걷다가 영화표 두 장을 예매한 뒤 두 자리를 차지하고서 영화를 보고 나와 두 가지 음식과 두 잔의 음료를 나눠 먹은 뒤 일어나 두 개의 그림자로 집에 돌아가는 그런 2의 세계로부터. 나는 괜찮았지만 누가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면 그 즉시 안 괜찮아졌던 걸 보니 사실은 안 괜찮았던 것 같다. 아니, 안 괜찮았다. 엄마 앞에서는 이것을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엄마는 내 숨소리만 듣고도 무슨 .. 2020. 7. 10.
혜정 그녀는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도대체 왜 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는 너무 신기해.” 그러게, 생각해보면 나도 참 신기하다. 내가 지금껏 겪은 일련의 어이없는 일들이. 하나씩 나열하자면 이상하게 웃음과 눈물이 함께 터지면서 해학과 한의 정서가 공존하는 ‘그런’ 상황들이. 그리고 나는 줄곧 그건 다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나도 모르는 나의 실수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이 혹은 그 상황이 나빴던 거야.” 그리고 차근차근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내 잘못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스무 살에 우리는 처음 만났지만 그녀도 나도 우리가 친구가 될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끔 소설에서는 병에 걸린 .. 2020. 6. 28.
연습 63년생 아빠는 많은 것이 어렵다. 복잡한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이 어렵고 딸에게 다정하게 말 거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가 어렵다. 여러 번을 알려줘도 같은 것을 또 다시 알려줘야 하는 것이, 점점 더 느리고 둔해지는 나이가, 아빠와 있을 때의 정적이 어렵다. 아빠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의 삶에서 낙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사실 나는 아빠를 잘 모른다. 그리고 아빠 역시 딸을 잘 모른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어느 정도냐면, 아빠는 내가 20살 때부터 6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존재를 몰랐다. 굳이 숨긴 것도 아닌데 졸업식에 와서야 '내 딸의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셨다. 친구들은 내가 아빠와 따로 사는 거 아니.. 2020. 6. 23.
시절인연(時節因緣) 안녕, 정민아. 나는 너고, 너는 나야. 나는 스물 아홉의 너지. 뜬금없이 오늘처럼 아무 날도 아닌 평범한 오월의 어느 날에, 아무 이유 없이 2년 전 스물 일곱의 나한테 편지를 쓰고 싶어졌어. 너는 늘 너한테서 편지를 받아보고 싶어 했잖아. 갑작스럽지만 그걸 오늘 한 번 해보려고. 29세 현재의 근황부터 알려줄게. 나는 지금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어. 올해는 1학년 담임을 맡았고, 자유학년제라 애들은 ‘나만의 책 쓰기’ 수업 중이야. 그래서 요즘은 애들의 글을 읽고 있는데, 읽다보면 정말 많은 감정이 몰려 오고는 해. 한 명 한 명이 갖고 있는 개인의 서사를 읽어내려 가면서 14년 인생사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있으니 당연하지. 그 중에는 내가 아는 사건도 있고, 모르는 사건도 있는데 그것들을 통해서 이.. 2020. 6. 19.
부부의 세계, 나는 알 수 없는 드라마를 보면서 도통 울지 않는 경애씨와 드라마를 보면서 대개 잘 우는 귀영씨와 함께 ‘부부의 세계’ 마지막 화를 시청했다. 이태오는 끝까지 찌질했고, 나는 그 찌질함이 준영이와 선우가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극에 달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죽어버리든가, 라고 말하는 선우의 말이 너무나 속 시원했고, 너무나 진심처럼 들렸다. 식사를 마치고 준영이, 선우와 헤어진 이태오는 지나가는 트럭에 뛰어든다. 엄마는 그걸 보고 정말 마지막까지 자기 생각만 한다면서 이태오를 격하게 씹고 뜯었다. 다음 장면에서 걸어가던 선우의 뒤로 끔찍한 사고를 상상하게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직감적으로 이태오에게 돌아간다. 이태오가 차에 치인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전까지, 그리고 이태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차에 치이지 않은 것을.. 2020. 6. 11.
자만추로의 회귀 ‘부먹/찍먹’에 버금가는 논쟁으로 ‘자만추/인만추’가 있다. 그리고 나는 두말 할 것 없이 자만추였다. 연애라는 목적의식이나 부담감, 의무감 없이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차곡차곡 유(有)의 상태로 나아가는 흐름이 좋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서 지켜 본 사람이라면 연인으로서의 모습 역시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인지 인만추의 정점에 있는 ‘소개팅’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누가 봐도 저 둘은 소개팅 중이란 걸 알 수 있는 그 어색한 기류가 거북했고, ‘파스타’라는 상징적 기호 역시 너무 진부했으며, 여러 소개팅 괴담이 배경지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진 이성(혹은 동성) 둘이 태어나서 처음 만난 그날에 서로를 탐색하기 위해 질문 폭격을 던지고 함께하는 시간 내내 상대..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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