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소설인 듯 소설 아닌, 그러나 너무나도 소설인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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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소설인 듯 소설 아닌, 그러나 너무나도 소설인 이슬아의 <가녀장의 시대>

by grabthecloud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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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살림을 공짜로 제공하던 엄마들의 시대를 지나, 사랑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던 아빠들의 시대를 지나, 권위를 쥐어본 적 없는 딸들의 시대를 지나, 새 시대가 도래하기를 바랐습니다.

작가의 말 中


P.41

이들에겐 좋은 것만을 반복하려는 의지가 있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을 반복하지 않을 힘도 있다.

 

P.98-99

복희가 죽으면 어떡하지? 그것은 슬아의 오랜 질문이다. 복희는 영원이 살지 않을 텐데, 복희가 죽으면 된장은 누가 만들 것인가. 중년이 된 슬아가 노년의 복희로부터 된장을 전수받을 것인가. 아니면 마트에서 파는 된장을 사 먹으며 엄마와 외할머니를 그리워 할 것인가. 그러다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칠 것인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십대의 슬아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채로 글을 쓰고 있다.

P.109

이야기가 된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구나, 존자는 앉은 채로 어렴풋이 깨달았다. 실바람 같은 자유가 존자의 가슴에 깃들었다. 멀어져야만 얻게 되는 자유였다. 고정된 기억들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P.123

"무슨 일을 해도 괴로운 건 마찬가진데..."

그러다가 철이를 돌아본다. 철이의 빡빡머리와 완벽한 두상을 응시하며 슬아가 말한다.

"잘하고 싶은 일로 괴로우면 그나마 낫잖아."

P.147

세상에 없는 다운의 엄마를 생각하며 읽고, 세상에 있는 복희를 생각하며 읽는다. 다운이 겪은 상실을 언젠가 슬아 또한 겪게 될 것이다. 그럼 슬아는 다운에게 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이 슬픔을 어떻게 참았느냐고.

그런 미래가 오리라는 것을 슬아는 자주 잊는다. 잊은 채로 어떤 슬픔도 없이 복희가 차린 밥을 먹는다.

P.180

숙희와 남희가 그렇듯 자신 앞의 생을 사느라 분주할 테니까. 그것을 기억해낸 슬아의 마음엔 산들바람이 분다. 관심받고 있다는 착각, 주인공이라는 오해를 툴툴 털어내자 기분좋은 자유가 드나든다.

P.225

특별한 이야기 없이 식사가 끝난다. 슬아와 웅이가 일어서고 복희는 혼자 남아 밥상을 치운다. 식탁에는 양념 묻은 빈 그릇들이 예쁘지 않은 모양으로 남아 있다. 복희 눈엔 어쩐지 그것이 처량하게 느껴진다. 그릇을 개수대에 옮기고 양념을 물로 헹궈내면서 어떤 허무함을 느낀다. 어딘가 익숙한 허무함이다. 어쨌거나 설거지는 미루지 않는 것이 좋다. 여름이 다가오니 금세 날파리가 낄 것 이다.

P.280-1

"남자를 만날거면,"

나사를 조이며 덧붙인다.

"너를 존경할 줄 아는 애를 만나."

그렇게 말해놓고 웅이는 생각에 잠긴다. 방금 자신이 한 말을 자기도 들었기 때문이다. 웅이가 알기로 여자를 존경할 줄 아는 남자는 잘 없다. 웅이 자신을 포함해서 그렇다.

(...)

그들은 아직 서로를 잃지 않았다. 슬아의 책꽂이는 상실을 모른다는 듯이 차곡차곡 채워질 것이다. 웅이의 공구실 문도 몇백 번은 더 열렸다가 닫힐 것이다.

P.297

서로가 서로의 수호신임을 알지 못하는 채로 그들은 종교의 근처를 배회한다.


 뼛속까지 장남인 가부장의 가족 체제 아래서 당연한 돌봄과 희생,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장녀로 자랐다. 직업을 얻고 누군가의 자녀들을 가르치며 살게 된 지금도 나는 내 손으로 내 옷 한 벌 빨아본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엄마의 상차림을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면 훌훌 식탁을 벗어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늘 엄마 한 사람이 남는다.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엄마 본인 조차도.

 소설을 읽는 초반에는 이것이 <일간 이슬아 수필집>과 무엇이 다른지 크게 체감할 수 없었다. 내가 읽고 있는 것이 <가녀장의 시대>인지, 가족이 소재가 된 <일간 이슬아 수필집2>인지 헷갈렸다. 그런데 내가 지금껏 살아 왔고, 여전히 살아 가고 있는 눈 앞의 가족을 보니 '가녀장의 시대'란 정말이지 너무나도 허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정말로 소설이구나, 라는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오면서 말이다. 소설 속에 나타는 슬아와 복희, 웅의 모습이 모두에게 당연하려면 얼마나 많고 다양한 전복이 필요할까? 그리고 이 책이 그 전복을 향한 작지만 확실한 저항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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