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앞으로 올 사랑> -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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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앞으로 올 사랑> - 정혜윤

by grabthecloud 202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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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임스 우드의 말마따나 문학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도와준다. 그 연쇄작용으로 우리는 삶도 더 잘 ‘읽어내게’ 된다. 우리는 늘 상황을 잘 읽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순간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의미는 얼마 뒤에야 따라온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54/ 어둡고 슬픈 일은 나쁜 일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어둡고 슬픈 그 일이 너무나 아파서, 아픈 나머지 길을 찾기 시작할 수도 있다. 아파해야 한다. 그 아픔을 막아 내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 또한 아파해야 한다. 가슴 아파함 없는, 안쓰러움 없는, 연민 없는 사랑은 없다. 가슴 아파할 수 있음이 앎과 변화를 낳는다.

 

76-77/ 삶의 해방은 다른 방식으로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삶의 해방은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해내면서 온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무엇을 할 힘과 무엇을 하지 않을 힘이 다 있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이 둘을 합하면 능력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의 관계를 바꾸는 것을 변신이라고 부른다. 무엇을 하는 힘과 무엇을 하지 않는 힘 사이의 균형을 평화라고 부른다. 이 균형을 잡으면서 우리는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이렇게 마침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

(…)

우리의 사랑 이야기에 무엇이 빠져 있는가? 우리의 사랑에 무엇이 없어서는 안 되는가? 너를 위한 나의 변신이다. 나는 너를 위해 나를 바꿀 것이다! 이 어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 사랑의 놀라운 힘이다.

 

88/ 그때 카슨의 머릿속에 막연히 떠오른 생각은 “내가 어떤 일을 했다”기보다 “나를 통해 어떤 일인가가 일어났다”같은 것이었다. 해안 숲 보존을 위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둘 무렵 레이첼은 “작가는 무슨 일인가 일어나게 만드는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카슨의 이 문장은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녀의 삶 자체가 되었다.

 

104/ 우리가 익히 아는 바 사랑은 손을 뻗는 것이고 팔을 벌려 안는 것이고 몸이 다가가는 것이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사랑은 실천이고 행동이고 창조다. (…) 그녀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

 

135/ 나는 처음에 당신을 하나의 이야기로 파악해보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는 숨은 질문이 있다. 당신에게는 끝까지 함께 할 사람이 있는가? 끝까지 헌신할 만한 어떤 것이 있는가?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게 있는가? 상황과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을 관계가 있는가? 이 사랑스럽지 않은 삶,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를 주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그 무엇이다.

 

165/ “‘희망’은 뭐지요?”

“‘희망’은 무척 원하는 일이 정말로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때 갖는 거예요.”

“‘잘 자요’란 말은 뭐지요?”

“당신이 좋지 못한 꿈 때문에 힘든 밤을 보내지 않고 편히 자길 바란다는 말이에요.”

“‘난폭한’은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영영 알 필요가 없으면 좋겠어요.”

166/ ’말을 하는 상처‘가 책이다. 책은 상처들의 목소리다. (…) 이렇게 해서 책은 이제는 사라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온기가 있는 다정한 곳이 되괴 과거의 깊은 상처가 미래를 위해 의미를 획득하는 곳이 된다.

(…)

“그런데 왜 상처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

“그건 상처를 만든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예요.”

 

189/내가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발견되는 기쁨을 말하고 싶다. 자기를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 그것은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사랑받을 만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음이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것이다. 건강한 자기애는 감사와 사랑을 보낼 타인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좋지 않게 행동하면 슬퍼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과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중 하나다.

 

191/ 이 거울은 황혼 녘에 접어든 노쇠해가는 우리 문명을 비춘다. 우리의 맨 얼굴은 쓰레기다. 우리는 쓰레기와 함께 몰락하리라. 우린 우리를 사랑했다. 그러나 우리를 바꿀 만큼은 아니었다.

 

263/ 피난처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파괴당하는 것에 대해 같이 욕하고 저항하는 장소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더 나쁜 것과 바꿀 필요가 없다. 굳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피난처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모인 곳이다. 피난처는 계속 살아갈 힘을 얻어가는 곳이다. 그렇게 우리는 무엇이든 돈으로 환원하고 마는 세계에 저항하고 인간성을 하찮게 만드는 세계에 저항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훨씬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재창조된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 같이 그렇게 된다. 이렇게 살면서 우리는 서로 꿈의 세계를 만들고 나눈다.

 

280/ 나에게도 나만의 노력, 나만의 어제가 있다면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변화, 나만이 만들 수 있는 내일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나만이 낼 수 있는 용기가 있을 것이다. 나만이 질 수 있는 책임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게도 단순하게 나아갈 길이 또렷이 보인다.

 

283/ ‘용해’라는 단어였다. 프루스트는 용해를 대략 이렇게 설명했다. “마치 사랑처럼 내 안에 번져가는 그 행복감과 더불어 내가 어떤 귀한 생명의 정수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그저 우연히 태어나서 살아가는 무의미한 존재, 결국 나중에는 덧없이 죽어가고 말 존재로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그 단어를 알기 전부터 그 단어를 살아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286/ 인간 조건은 계속 가혹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사랑을 보고 싶다. 이 위험한 세상 한가운데서 홀로 애쓰고 있는 사람은 늘 감동을 준다. 약간이라도 나아지려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도 감동을 준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도 감동을 준다. 자신이 맡은, 해야 할 일을 해내기 위해 가진 힘을 다 쓰는 사람도 그렇다. 나는 이런 것들을 사랑하면서 버티고 있겠다.

(…)

“잘 자요!”

“‘잘 자요’는 무슨 뜻인가요?”

“‘잘 자요’는 오늘의 가장 좋은 시도와 내일의 가장 좋은 시도 사이에서 잠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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