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결혼과 페미니즘은 함께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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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결혼과 페미니즘은 함께 갈 수 있을까

by grabthecloud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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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할 거리
# 여자도 인간이다
# (남자를) 고쳐쓸 수 있을까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오류
# 내 안의 '한남성'
# 남성 강제 육아 휴직 제도
# '연애 - 결혼 - 출산 - 육아'라는 굴레
# 시댁이 아니라 '시가'
# 며느리의 의미
# 결혼을 왜 해?
# 비혼의 다양한 형태 - 부부말고 '동반자' (ex.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생활동반자법

 

책 속 문장

/프롤로그 - 결혼한 페미니스트도 행복할 수 있을까
p. 13 나는 한남과 페미니스트를 가르는 것은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 체감했다. 의식적으로 경계하지 않는다면 강자의 위치에 선 누구나 한남이 될 수 있는 거였다. (...) 페미니스트는 후천적이고 의식적인 지향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매일매일의 실천이다.

p. 16 그럼에도 나는 지금 이시대에 여전히 결혼이 갖는 가치가 있다면 시대착오적이고 맹랑하게도 영원을 약속하는 점 때문이라 믿는다. 누군가와 함께 살 필요도 능력도 사라져 가는 시대, 함께 살기의 기반들이 빠르게 해체되어 가는 와중에도 결혼을 선택한 이들은 영원을 약속하며 손을 맞잡는다. 제도가 지금보다 견고했던 시대에도 함께 살기는 쉽지 않았다. 에바 일루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의 근육'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 그렇다.

p. 17 문제는 그 함께 살기의 형태가 꼭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적인 '결혼'이어야 하냐는 것이겠다. (...) 숭고한 건 결혼이 아니라 단단한 저마다의 관계들이다.

 

/폭력 - 결혼 혹은 폭력의 역사
p. 27 그저 남자 말을 따르고 욕망을 숨기라는 겹겹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인간됨이 비죽 드러나는 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정 폭력이란 그런 여성을 다시 소유물의 위치로 돌려놓기 위해 휘두르는 폭력이다. (...) 이런 역사를 이해하고 보면 데이트/가정 폭력범들은 어디서 갑자기 툭 떨어진 미친놈이나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그들은 '뒤떨어진 놈'이라 해야 정확할 것이다. 시대가 변해 어쩔 수 없이 머리로는 여성도 동등한 인간임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자존감이 위협받을 때면 여전히 여성이라는 고분고분한 받침대가 절실한.

p. 29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안전에 유의하며 어떤 남자들은 각별히 피해야만 한다. (...) 데이트 폭력에 대해 알고 나서 명쾌해진 기분이었다. '여자들은'으로 시작하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 즉 여성에 대한 검증되지 않은 편견이 많은 사람(인풋이 무엇이든 같은 아웃풋으로 귀결되는 사람), 옷차림이나 귀가 시간 등에 통제가 많은 사람, 자신이 더 가져야 한다고 당연하게 가정하는 사람, 내 말과 생각에 교묘하게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위험하다. 아무리 나를 위하고 다정하고 배려해 주는 사람이라도 이런 기미가 있다면 도망치는 게 좋다.

 

/재정 계획 - 여자가 남자와 결혼한 이유
p. 39 여성들은 결혼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신을 의탁할 재정 공동체를 꾸리는 게 목표가 아니라면 남성과 무엇으로 결합할 것인가. 사라응로 결합한다는 관점이 주요해진다. 혹은 굳이 결합할 필요가 없겠다는 관점이 등장한다. 좀 더 다양한 세목들이 고려의 대상으로 들어왔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면 남자에게 무엇을 바랄 것인가. 사랑의 자원이 될 만한 것들, 예컨대 아름다운 외모와 커뮤니케이션 능력, 공감 능력과 세심한 배려심 같은 것이 중요해졌다. 나이에 쫓겨 배우자를 급히 결정하기 바쁘던 여자들은 차차 느긋하고 신중한 평가자가 되어 갔다.

p. 43 이런 시대에 결혼을 희망한다는 건 남성이든 여성이든 저마다의 상황 속에서 새 시대의 '관계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의미다. 나의 인생에서 결혼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결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관계의 이상은 어떤 것인지, 기성의 성 역할에서 벗어나 어떤 식으로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없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부지런히 맞춰 보는 수밖에.

 

/자유와 평등 - 자유롭고 평등할수록 불안정해지는 관계의 역설
p. 47 그러니까 그건 결혼이라는 제도 차원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의 본질과 관련 있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 나와는 다른 '차이'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p. 49 혼자 사는 일이란 얼마나 편한가! 왜 굳이 같이 살려는지 물어야지, 비혼이 늘어나는 데는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인다. (...) 어느 순간 함께하기의 '피로'가 함께하고 픈 '필요'를 초과하게 되면 우리는 고민하며 묻게 된다. 왜 나는 이 사람과 계속해서 함께하면서 이 모든 피로를 감당해야 하는가?

p.50 현대의 부부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고 말한다. 함께 살기가 예전보다 확실히 더 어려워진 게 맞다는 것이다. 그 어려움의 핵심을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1)평등의 문제는 '가정 내의 노동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공평한가'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평등을 지향하는 현대이 부부들에게는 정해진 역할이랄 게 없고 모든 것이 협상의 대상이다. 많은 젊은 부부들에게 가사의 피로란 노동의 피로이기 전에 이 끝없는 협상이 야기하는 피로라 할 수 있다. 정답은 없고, 협상은 지난하다.

p.51-52 (2)자유의 문제란 개인성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변화한 것과 관련이 있다. (...) 주권적 우울이란 스스로를 주권자로 인지하는 주체가 주권이 훼손되고 부정되는 체험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부서짐이다. 나는 결혼한 여성의 우울 역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했다. 그 우울은 말하자면 더 이상 내 인생은 리셋이 불가능하다는 데서 오는 우울이다. (...) 그러나 남녀 모두에게 선언적으로나마 동등한 자유가 주어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포기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상황은 여성에게 해방이었지만, 동시에 함께 살기의 가능성이 약화됐다.

p. 55 서로 사랑하는 인간이란, '그래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니까 양보하자'고 통 크게 마음먹었다가도, '아니 근데 저 인간도 나를 사랑한다면서 왜 나만?'이라는 지당한 의문에 사로잡히고 마는 갈대 같은 존재다.

 

/성차 - 생물학과 사회학 사이에서
p. 63 여성이 냉담한 남성과의 관계에서 갑갑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남성의 특성을 여성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의 정서적 욕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남성의 무심함을 남성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정받으며 면죄부를 얻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p. 69 모든 문제에는 생물학적 성차와 사회 구조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다른 모델로도 설명할 수 있는 문제를 우리는 지나치게 성차 모델에 의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 72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관계를 분석하는 틀은 점점 섬세해졌고, 남과 여로 가르는 뭉툭한 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 (...) 우리 사이에는 남성과 여성의 일반적인 차이보다 훨씬 많은 차이가 있고, 함께 살며 닮아 간 부분으로 따진다면 무작위로 선택한 동성보다는 서로과 훨씬 비슷해졌다.

p. 73 그리고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성차, 본능, 자연 같은 단어를 들먹이는 이들은 언제나 권력을 가진이들이었다는 것을. 성차가 존재하듯 본능과 자연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동일한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해석의 대상일 것이다.

 

/한남 - 어느 한남 페미니스트의 고백
p.79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얼마 뒤 내가 바깥일을 하고 그가 가사를 맡는 생활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내가 일하고 남편이 집에 있는 상태가 길어질수록, 나는 자꾸만 내 안의 '한남성'을 발견했고 남편은 페미니스트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

p. 81 한남과 페미니스트를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념과 지향의 문제 같지만 그 이전에, 각자가 처한 입장의 문제였고, 결국은 실천의 문제였다. 나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입장이 이념과 지향을 배반하기란 얼마나 쉬우며, 실천과 멀어지기는 또 얼마나 쉬운지 알게 됐다.

 

/시가 - 가족 제도의 문화 지체
p.98 전통이란 '의도적으로' 발명된 것이며 그 의도란 권력의 정당화다. 전통의 힘이 셀 때는 그게 영원할 것 같지만, 한번 균열이 생기면 생각보다 쉬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전통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낙관한다. 그간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럽겠지만, 물적 토대가 사라진 문화는 오래 지탱될 수 없다.

p. 100 어머니에게는 그 세대 어른 중에서는 드물게 '부부 중심성'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지내든 '두 사람'이 만족하며 그만이고, 한 가정의 핵심은 '부부'이므로 부모가 그 관계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렇기에 나를 여러 의무와 역할을 진 '며느리'가 아니라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대한다. 자식의 친구가 오면 우리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잘 대해 주듯, 아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존재로 나를 대해 주신다. 그러니 나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키워 준 부모로, 예의와 선의로 대할 수밖에.

 

/출산과 육아 - 선택에 반대한다
p. 111 가장 걱정하는 것은 출산 후 '엄마'라는 타이틀이 내 삶에 붙고 나서다. '엄마라는 사람이'로 시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끝없는 오지랖, '엄마'라는 역할만 남기고 개인적인 욕망은 모두 오려 가는 무신경함이 나는 걱정된다.

p.115 부디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한 엄마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이를 키우는 다양한 방식을 지원하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 아이를 낳아도 불행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나도, 여자들도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폴리아모리 - 근대적 사랑의 종말
p. 127 독점적 연애든 다자연애든 어느 방법이 그 자체로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잘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는 일은, 어느 방법이든 어렵다.

 

/비혼 시대 - 남자 없이 완벽한 삶
p. 131 도래한 비혼 시대를 맞아 우리도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결혼 안 해, 에서 왜 결혼해, 로.

p. 135 결혼을 왜 안 할까?라고 물으면 이런 결론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이 물음은 결혼을 하는 것을 디폴트로 놓는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결혼 해 왔고, 그게 유대로 결속이고 헌신이니까 이걸 하지 않는 건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다. 나는 이 관점이 뭔가 이 상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유대고 결속이고 헌신이고 별 문제가 없었다. 남자와 가족이 될 생각이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그 이유는 너무나 합리적이었다.

p. 137 관계가 풍요로운 사람은 비혼이어도 풍요롭고, 빈곤한 사람은 결혼해도 빈곤하다. (...) 이들은 유대 능력을 잃어가는 현대인, 고독한 비혼자 같은 이미지는 가짜라는 걸 알려준다. 혹은 그런 표현 속 '현대인'과 '비혼자'의 성별은 남성이 아닐까 의심하게 한다.

p. 139 나는 나의 상황과 마음에 따라 출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출렁이는 존재야. 하한선은 이 정도고 상한선은 이 정도야. 어때, 나를 감당해 준다면 나도 너를 감당해 주겠어. 결혼은 이를 법적으로 보증한다. 이 법적이면서도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안전망 때문에 비혼을 택한 이들도 마지막까지 망설인다.

p. 140 결혼이 줄어드는 건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성애 연인이 결혼 제도를 통해야만 복지와 사회 안전망을 누릴 수 있는 국가에서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지원하는 국가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결혼을 택하지 않고도 '안정'과 '안전'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더 많은 모델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p. 143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아닌,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지 않은,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온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둘의 삶을 지탱하기에 부족한 기반을 오로지 두 사람의 힘으로 다지고 메워 가며 묵묵히 살아온. '동반자라는 말 듣지 좋네요'하는 말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들의 관계가 이르을 갖기를 원했을지 헤아려져 마음이 조금 먹먹해졌다.

 

/경멸 - 빛나던 연인, 경멸하는 부부
p.152-153 부부처럼 상대의 감정이 내 일상의 안위와 직결된 관계에서, 상대의 잦은 좌절은 때로 우리를 피로하게 한다. 사랑하는 이가 낙담하는 건 물론 안타깝다. 잠시 위로하는 건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되면, 누구든 지치고 그 정도 성취조차 해내지 못(해 나를 지치게)하는 상대방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혹은 그럼에도 반복되는 그의 도전이 미련하게 느껴진다. 오늘과 같은 공연이 처음이 나닌 에이프릴은 알고 있다. 프랭크가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걸.

p.156-7 경멸이란 무엇인가. 내가 당신을 안다는 것이다. 당신의 허영, 좌절, 욕망과 시도 모두 나의 손바닥 안이기에 당신은 내게 지루한 존재라는 것이다. 사랑은 모른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자신이 완전히 그러잡을 수 없는 존재를 욕망한다. (...) 경멸은 당신이 내게 어떤 균열도 낼 수 없는 지루한 존재라는 의미이고, 그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장소다.

p.158 그러므로 평등은 결혼 생활에서 달성되면 좋은 것이 아니라 핵심이다. 함께 성장하는 평등한 관계만이 시간과 생활과 권태를 이기고 사랑을 지속시킨다. 결혼만이 아니라 사랑의 조건이 평등이다. 그리고 평등에 구멍이 뚫릴 때, 경멸이 찾아온다.

 

/불륜 - 내가 모르는 당신의 시간
p. 166 결론부터 말하면, 연인이 다른 누군가와 했을 섹스란, 서로에게 더없이 투명한 것 같은 순간에도 나의 연인은 그 내면을 도저히 알 수 없는 '타인'일 뿐이라는 진실을 가장 명백하게 상기시키는 기호라는 것이다. (...) 내가 참여하지 않은 섹스란 상대으 가장 내밀한 영역에 관한 은유다. 그렇게에 그의 해명으로 해명되지 않으며, 홀로 무한히 증폭되는 것이다. 나는 그 섹스의 의미를 영원히 알 수 없다.

p. 169 우리가 쌓아 온 시간은 언제고 흩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우리 관계가 흔들림 없으리라는 확신은 가능한 유보해 두자고 생각하게 된다. 서로가 평등하게 헌신하는 관계라는 가정 하에, 불륜이나 바람은 결국 관계에 생긴 어떤 결여의 표현이다. 1인칭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는 나에게 불륜에 대한 상상은 유용하다. 조금 쓸쓸하지만, 그만큼 겸허해진다.

 

/함께 살기 - 안정감의 종신 계약
p. 174 상대의 약함을 발견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약한 사람을 때려눕히지 않기 때문이다.

p. 175 내가 함께 사는 일에 관해 아는 진실은 하나뿐이다. 함께 사는 건, 어렵다. (...)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인데, 그냥 다른 게 아니라 사랑을 느끼는 방식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내가 받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그는 주지 않고, 그에게 나 또한 그렇다.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사랑하는데 정작 상대는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서운해하며 엔트로피 0과 100 사이를 각자의 속도로 왕복운동 하는 것이 함께 살기다.

p. 176 함께 사는 일의 장점은 훨씬 단순했다. 그건 안정감과 관련되어 있었다. (...) 혼자 하는 말들은 대부분 불안과 얽혀 있다. 혹은 그 불안을 걷어내기 위한 안간힘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안정감 있는 생활을 위해서는 내가 나에게 잠식되지 않도록 환기시켜 줄 '장치'가 필요하다. 함게 사는 사람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장치다.

p. 178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인간은 그 자신만으로는 안정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위가 아니라 필연의 문제이다. (...) 안정은 자신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 곁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p. 179 나를 능숙하게 조절하는 이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 안정이고, 앞으로도 이렇게 서로의 곁에 머무를 것을 영구적으로 약속하는 제도가 결혼일 수 있다. (...) 슬프거나 가난하거나 아플 때 도망갈 생각 말고 곁에 있으면서 서로를 건져 주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p. 181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나아진다. 한편 말투나 자주 쓰는 어휘, 태도와 분위기는 점차 닮아 가서 우리가 맞춰 가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아주 힘든 일은 때때로 아주 보람 있는데, 함께 사는 일이 그런 일이 아닌가 한다.

 

/에필로그 - 더 많은 목소리가 들리게
p. 186 그러므로 나는 결혼은 앞둔 여성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우선 결혼할 상대를 보아도, 그의 가족을 보아도 영 답이 없는 것 같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아닐 것 같을 때는 감이 온다. 이 감을 믿어야 한다. 나의 직감을 부정하는 의지적인 생각(사랑으로 이길 수 있다거나, 살다 보면 나아질 거라거나)들을 밀어내야 한다. 일상에서 고통받다 보면 사랑은 별로 힘이 없다. 내가 왜 결혼을 하려는지, 무엇에 쫓기거나 누군가에게 떠밀려 하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자.

p.191 페미니즘을 좀 더 범박하게 정의해 보기로 한다. 여성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는 것, 나아가 여성이 가져 마땅한 정당한 권력을 요구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하나의 이미지, 단일한 목소리밖에 없다는 것은 그 집단이 소수라는 방증이다. 페미니즘 역시 그렇지 않을까. 페미니즘이 달성한 사회란 전투적이로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느슨하고 낙관적인 페미니스트도, 흐릿하고 망설이는 페미니스트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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