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영화 <본즈 앤 올>, 러브 이즈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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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간 마음

영화 <본즈 앤 올>, 러브 이즈 올

by grabthecloud 202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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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너를 자유롭게 해줄지도



‘청소년 관람 불가’에 ‘카니발리즘’을 소재로 하였으며, 장르에는 ‘공포’가 멜로/로맨스보다 앞서 적혀있는 영화. 카니발리즘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무서운 것과 잔인한 것을 잘 보지 못하는 내가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 결정한 이유는 책 「구의 증명」이었다. 영화 소개글과 예고편을 보자마자 바로 든 생각은
‘뭐야? 이거 완전 「구의 증명」 실사판이잖아?’였기 때문이다.

책과 영화의 공통점은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성장기에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것과 여자가 남자를 먹는다는 것 두 가지 정도가 되겠다. 영화를 보기 전엔 이 교집합에 끌렸는데 영화를 직접 보고 나니 둘의 차이점에 더 매료되었다. 책은 책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각의 여집합이 훨씬 더 크고 매력적이었다.

시작한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매런은 친구의 네 번째 손가락을 먹어 버리고 달아난다. 이후 내내 관객인 나는 조마조마함의 연속이다. 매런과 리가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도 둘이 갑자기 돌변해 서로를 뜯어 먹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영화는 지극히 평화롭다가 지독히 절망적인 상황으로 자꾸만 반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동안 계속 긴장해야 했는데 나는 그 긴장 속에도 매런과 리의 평화를 간절히 빌었다. 매런이 원하는 대로 리와 평범하게 살 수 있길. 그래서 그 두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길. 자기 팔을 먹어 버린 매런의 엄마처럼 되지 말고, 어딘가가 어긋난 설리처럼 되지 말고,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제이크처럼 되지 말고 사랑 안에서 비로소 자유롭길.

영화 중반부에 우연히 만나 함께 술을 마시게 된 제이크는 매런과 리를 보며 ‘겉보기에 불안해 보이는 건 매런같지만 사실 정말 위험한 것은 리’라고 말한다. 그가 위태로운 리에게 건넸던 말을 나는 내내 잊을 수가 없었다.
‘사랑이 너를 자유롭게 해 줄지도’
그리고 그의 말대로 리는 비로소 사랑으로 자유로워진다. 지독한 이터의 운명으로부터. 설리를 막다가 폐를 찔려 살 가망이 없어진 리가 매런에게 주저없이 이렇게 말한다.
‘나를 먹어줘. 나를 사랑하고, 먹어줘. 뼈까지 전부.’
이 부분에서 나는 다시 「구의 증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역시나 눈물이 났다. 울면서 리를 먹는 매런. 비극적인데 자꾸만 자유로워지는 것 같은 리.

그리고 영화는 둘이 송전선과 송전탑이 없는 드넓은 곳에서 매런과 리가 평화롭게 서로를 마주하고 껴안고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시간상으로 본다면 그것은 리가 죽기 이전의 일이지만 영화는 매런이 리를 먹은 이후 그 장면을 배치하여 이야기를 끝낸다. 리는 죽음으로써 자유로워졌고, 매런은 리를 먹으며 최초의 능동적 살인과 식인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내내 타인의 주도 아래 놓여 방황하던 매런이 자신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결정한 최초의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영화가 방황하는 청춘의 성장을 다룬 영화라 해석되는 것 아닐까.


루카 구아다니노의 관능적인 로맨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에서 올리버(아미 해머)는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에게 속삭였다.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것. 이것은 이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와 티모시 샬라메가 다시 호흡을 맞춘 《본즈 앤 올》은 한발 더 나아간다.

리(티모시 샬라메)는 매런(테일러 러셀)에게 말한다. “나를 먹어 줘. 뼈와 모든 걸(Bones and All).”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진짜로 나의 뼈와 살을 남김없이 입으로 먹어 달라는 부탁이다. 그리고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절절한 사랑 고백’이다. ‘당신이라는 타인’과 ‘당신에게 타인인 나’가 완벽한 하나가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이 섬뜩한 부탁이 사랑 고백이 되는가. 《본즈 앤 올》은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아가는 영화다. ‘식인’이라는 소재 때문에 관람을 일찍이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외면하지 않고 이들의 여정에 동행한다면 장담컨대 리의 저 나지막한 외침이 당신의 심장을 먹먹하게 물들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영화 《본즈 앤 올》에서 감지되는 건 ‘고독’과 ‘결핍’이다. 매런은 자신이 누구인지, 왜 남들과 다른지,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지 자문하지만 매번 넘을 수 없는 벽과 마주한다. 사회 시스템에서 이미 밀려난 리 역시 다르지 않다. 태생부터 쥐어진 것과 사회가 규정한 것들 사이의 거대한 괴리와 충돌. 금기된 것과 아슬아슬하게 동거해야 하는 ‘이터’에게 외로움과 정체성 혼란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고독 속에서 《본즈 앤 올》이 길어 올리는 건 사랑이다. 리가 매런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눈뜨게 한다면, 매런은 리의 얼어있던 내면에 불을 켜준다. 매런이 리를 통해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면, 리는 온전히 자신을 껴안아주는 매런을 통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한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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