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고양이와 고딩 <1> : 선준
본문 바로가기
써 내려간 마음

고양이와 고딩 <1> : 선준

by grabthecloud 2020. 7. 15.
728x90
728x90
BIG


-내가 사무치게 귀여워하지만 그런 나를 자주 미안하게 만드는 존재가 두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에 대해 쓰려고 한다.

많게는 열 살, 적게는 여덟 살 차이가 나는 02-04년생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요즘 애들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힘들지 않다는 대답은 거짓이지만 힘들다는 대답 역시 진실은 아니다. 어떤 날은 내 영혼까지 탈탈 털어 진을 쏙 빼놓다가도 금세 본인들만 줄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힘으로 산다. 너무 기상천외해서 귀엽고, 너무 뻔해서 우습고, 너무 불안해서 안쓰럽고, 너무 열심이라 애틋하고, 너무 순수해서 멋있고, 너무 불순해서 안타깝고, 예상외로 속이 깊어 놀랍고, 예상대로여서 시시하고, 나보다 뛰어나서 나를 자주 부끄럽게 만들고, 너무나 어른다워서 어른을 진짜 어른이 되도록 하는 아이들로부터 나는 항상 많은 것을 받고 있다. 이들의 매력과 귀여움이 학교 밖 사람들에게도 널리 전해지길. 고양이와 고딩 시리즈를 언제 또 공개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첫 번째 편에서는 선준이란 아이를 소개한다.

선준이는 소위 말해 ‘1년 꿇은’ 복학생이고, 왼쪽 팔에는 어깨부터 손목까지 타투가 있다. 교칙 상 팔토시로 타투를 가려야 하지만 선준이는 그 멋없는 팔토시를 선호하지 않는 듯 항상 맨팔로 다니며 벌점을 적금처럼 쌓는다. 그런 타투를 교실에서 볼 거라 상상하지 못한 편협한 교사인 나는 수업 첫날 그 실물을 보고 흠칫, 놀랐다. 비겁하지만 얘는 수업 시간에 핸드폰을 써도 그냥 못 본 척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준이는 편협한 사고를 벗어나는 발랄하고 산뜻한 모범생이었다. 복도에서 만나면 꼭 웃으면서 “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달려오고 교실에서는 대답도 열심히 한다. “쌤! 밭이랑이 [반니랑]으로 ㄴ첨가 되는 건 왜 그래요?”와 같은 날카로운 질문도 한다. 나는 그에게 ‘문천(문법 천재)’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시험 전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맨 뒷자리에서 “쌤~ 저 국어 꼭 백점 맞을 게요~”라고 말하는데 선준이가 정말로 백 점을 맞든, 안 맞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각오와 너스레가 그저 예쁘다. 순회 지도를 할 때는 꼭 일대일로 칭찬을 해주려고 하는데, “이거 잘했다! 이따 발표해도 좋겠다!”라고 하면 선준이는 이렇게 속삭이며 가소로운 허세를 부린다. “쌤~ 저 03이에요~ 껌이죠~” 이제는 그 허세마저 귀엽다. 발표를 하거나 나와서 문제를 풀면 하리보를 주는데, 저번 주에는 젤리가 부족했다. 받을 사람은 두 명인데 젤리는 하나였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지난 시간에 먼저 발표한 선준이를 주고 세훈이는 다음 시간에 꼭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젤리를 받은 선준이가 씨-익 웃으면서 세훈이에게 “야, 봤냐? 쌤은 날 더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정정할까 하다가 귀여워서 관뒀다.

선준이는 내 귀에 피어싱이 7개 있는 것과 반지를 여러 개 끼는 것, 손등에 타투 대신 볼펜으로 그날 처리해야 할 업무를 지저분하게 적어두는 것, 다른 선생님들보다 나이가 어린 것 등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 아이의 지난 1년과 타투에 관해 가졌던 나의 싸구려 호기심과 선입견 때문에 하마터면 그런 선준이를 제대로 보지 못할 뻔했다. 선준이는 선생님이 이렇게 별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나를 잘 따른다. 그런 선준이를 볼 때마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728x90
728x90
BIG

'써 내려간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몫의 부끄러움에 대하여  (0) 2020.08.15
사건의 전말  (0) 2020.08.01
1과 2  (0) 2020.07.10
혜정  (0) 2020.06.28
연습  (0) 2020.06.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