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디스옥타비아> - 유진목, 사랑하는 이가 나를 두고 먼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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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디스옥타비아> - 유진목, 사랑하는 이가 나를 두고 먼저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by grabthecloud 2020.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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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는 이 삶에 나를 두고 가야 하는 것을 슬퍼했다. 이제 곧 끝날 텐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나를 보며 말했었다. 사랑해. 우리는 그런 시간을 하루도 빠짐없이 보냈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슬픔에 잠기는 대신 사소한 장난을 치면서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해 질 녘 붉은 빛이 가득 찬 방에 누워 내 눈을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삶이 흐르고 있다는 게 느껴져. 나는 그의 얼굴을 감싸 안고 주름진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센터에 오기 전에 그와 함께 살았던 삶을 떠올렸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다. 사랑하는 일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 사랑을 할 때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 죽음은 나에게 남은 가장 마지막 미래다.

 

-나는 내가 이 삶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는 우리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그는 나의 확신이었고, 나의 행복이었고, 나의 고통이었으며, 나의 시간이었다. 이제 그의 육체를 떠올릴 수는 없다. 내 손에 닿던 감촉을 나는 잊었다. 아무리 집중해도 그의 몸의 감촉을 되살리지 못한다. 거울 속에는 그가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다.

 

-두려움은… 나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살아있는 일을 원망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하는 일이다. 두려움을 모로는 사람에게 내가 관대할 수 있을까? 세상에 한 번도 크게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을 보는 일이 나는 늘 고통스러웠다.

 

-율리는 센터 밖으로 나가서 내일을 생각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며 살고 싶다고도 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두 발로 걷는 일이다. 두 발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거기에는 길이 있고, 날씨가 있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거는 나의 마음이 있다.

 

-매번 마지막일 거라고 이를 물고 버틴 고통이 그다음 찾아온 고통 앞에서 순순히 흩어질 때면 나를 죽이러 시간을 거슬러 가는 상상 속에 잠기곤 했다. 그때로 돌아가서 죽으라고 말해.

 

-마음은 내 얼굴을 활기에 차 있도록 만들기도 하고 쉽사리 걷히지 않는 그늘에 가두기도 한다. 나는 그늘진 얼굴로 궁핍한 차림을 하고서 구석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오랫동안 꾸준히 지녀온 가장 속된 욕망이었다.

 

-하물며 나는 많은 날들 동안 태어난 것을 원망했었다. 원망하며 살지 않기 위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내게 주어지는 것들을 누리다 죽기 위해서, 나는 노력했다. 아이는 이 삶을 사랑하게 될까? 이 삶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아이도 노력할까? 고통스러운 시간을 원망하지 않고 죽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나의 삶을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나와 그 사이에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을 다시 한 번 살고 싶다. 오직 두 사람만 남긴 채로 망설이고 머뭇거리며 문을 닫던 순간을.

 

-나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자신을 살려 두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나를 살아가게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삶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처럼. 한때 나는 만족스러운 삶의 한가운데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 절망했다. 우리가 함께하는 삶이 반드시 끝나리라는 것. 나는 혼자 남겨지리라는 것. 그가 혼자 남겨진다면 그 역시 절망할 것이다. 그는 슬픔에 잠길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도 나는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슬픔과 기쁨이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슬픔과 기쁨이 둘일 때는 그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비참을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 때가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오로지 혼자서만 책임지면서 타인의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은 요구만 할 뿐 책임은 없다. 타인의 요구를 거부하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나는 고립된다. 하지만 본연의 모습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좋아한다. 구름을 따라 움직이는 나의 마음을. 그러니 삶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타인은 향해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할 수 없다. 떄로는 삶에 대해 입을 다물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율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신비롭게 여겼다. 그건 마치 자기 자신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으로 들려요. 내가 살아가는 데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하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것도 내가 밥을 맛있게 먹고 밥을 무척이나 좋아해서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내가 음식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밥을 맛없게 먹는 사람이었다면 대신 내 앞에 마련돼 있던 모든 불행을 그대로 맛보았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사랑은 사랑으로 시간을 흐르게 한다. 고통은 고통으로 시간을 흐르게 한다. 욕망은 욕망으로, 편견은 편견으로, 거짓은 거짓으로, 제 나름의 시간을 흐르게 한다. 진실로 흐르는 시간은 없다. 나는 거짓으로, 편견으로, 욕망으로, 고통으로, 사랑으로 흐르는 시간을 살았다. 나에게 와서 흐르던 시간이 언젠가 나에게로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인생은 자주 함정을 놓고 함구한다. 시간은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땐 왜 그렇게 머리를 남자처럼 하고 있었어? 내가 남자 같았어? 정말 예뻤어. 내가 예뻤어? 예뻐서 어쩔 줄 몰랐어.

 

-외롭다는 상태를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름으로는 용납이 잘 안 됐다. 그러다 어느 책이나 영화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을 보게 되면 그제서야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를 수 있었다. 그 순간을 빌어 나에게도 외로움을 느껴도 괜찮다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도 괜찮다고 다독이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 외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싫었다. 외로움을 드러내는 타인을 만나는 것은 싫었따. 실제로는 그 역시 해결할 일을 그대로 둔 채인 게으른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밖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타인에게서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나의 일생에 대해 아는 사람은 이제 나뿐이다.

 

-나는 실패하기 싫었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 섞이지 않았다. 나에게 사랑은 가장 나중에야 생겨나는 것이었지만 그 나중이 오기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은 그가 전부였다. 모든 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전에 왔다가 사라졌다.

 

-삶은 이상한 것이다. 내가 원할 때 곧장 멈출 수 없다. 계속하고 싶을 때 계속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걸 공평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러 번 삶을 멈추고 싶었다. 이젠 정말 그만하고 싶다는 충분한 감정이 아니라, 지쳐서, 힘이 없어서, 원하는 삶이 너무 멀리 있어서, 그저, 단지, 멈춰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그럴 때 정말로 자기 자신을 죽일 수 있다면 어떨까. 삶에 대해 이런 마음이 스칠 때 나는 슬픔을 느낀다. 애초에 나에게 주어진 자유라는 것도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만 누릴 수 있는 제한적인 자유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받아들이는 만큼 또 세상을 미워했다.

 

-내가 가진 적은 것들이 나를 비참하게 할까 봐 대범한 마음과 대범한 태도를 가지려고 했다. 삶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무엇보다 몸이 그 마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나는 나를 훈련시켰다.

 

-어떤 감정은 나를 찾아와서 다짜고짜 내 앞에 머무른다. 내 주위를 하나둘 장악하며 정확히 내 앞에 당도한다. 귀신처럼 따라다니면서 내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옆에 바짝 붙어서 나를 그저 쳐다보기만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눈에만 보이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게 괜찮았어요? 불행하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몹시 어려웠을 것 같네요. 나라면 못했을 거예요.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불행은 나를 찾아오지만 행복은 내가 찾아가는 것이다. 삶은 그것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불행은 정확히 나를 찾아서 온다. 하지만 불행이 나를 찾기 전에 나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불행이 나를 알아볼 수 없도록. 행복도 그렇다. 행복도 매번 다른 형태도 다른 곳에 있다. 내가 누린 행복을 다시 한 번 누릴 수는 없다. 살아오는 동안에 나는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행운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쁜 일은 어쨌든 생기거나 안 생기거나 하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더 많이 글을 써야 했다. 책임질 수 있는 것과 당장은 책임질 수 없는 것, 하지만 생각해보고 싶은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더 많이 썼어야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자신에게 올바른 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언젠가는 죽음을 결정한 사람이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생을 마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나의 미래가 되기를 꿈꿨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사랑은 계절처럼 흘러갔다. 사랑은 봄이었다가 여름이었다가 가을이었고, 겨울처럼 차고 단단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로만 남을 자신이 있었다. 우리가 표류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우리만 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결코 두렵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던 일들이 그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내가 여기에 털어놓는 말들로 인해 나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타인처럼 늙어버린 나에게 조금쯤은 다시 관심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인지 이틀인지 모르는 시간이 나에게 남아 있고,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모두 과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과거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었다.

 

-나는 먼 훗날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인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살아오는 동안에는 태어날 때 내 몫으로 주어진 불행을 감당하고, 인내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 뒤에는 없어도 좋을 나쁜 일들이 나를 찾아왔다. 불행은 행복이 마련해둔 빈자리에서 살아간다. 그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글을 쓰다 말고 고개를 들어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그토록 절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픈 것은 아프지 않고, 이미 손쓸 수 없이 망가진 것은 온전한 채였다. 원인과 결과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수없이 그 까닭을 되짚었던 일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일들은 그저 몰라도 되는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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