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붕대 감기> 윤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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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붕대 감기> 윤이형

by grabthecloud 2020.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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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가족부 산하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지원 정책 수행.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 등

www.stop.or.kr


윤이형 작가의 절필 선언을 응원합니다.


/첫 문장 – 오전에는 드라이와 커트 손님이 각각 두 명씩 있었고, 점심을 먹고 나자 미리 예약해둔 파마 손님이 왔다.

 

/마지막 문장 – 하지만 그런 애틋하고 닭살 돋는 말들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어떤 표정을 보내서 이 아이를 웃겨줄까, 생각하며 진경은 손가락으로 이모티콘 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진짜 페미니즘’을 넘어서

… 그러나 여성다움에 대한 강요가 폭력인 것처럼, 여성다움에 대한 과도한 혐오와 경멸 또한 폭력일 수 있다. 이는 진경을 경멸하는 세연의 복잡한 내면 사정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여성에게 아름다움이란 남성중심적 사회 혹은 자본주의적 질서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시켰는가 여부에 따라 판정되는 가치에 불과하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이 때로는 더 가혹한 가부장제적 규범(왜냐하면 맨얼굴인데 예쁘기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으로 작동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탈코르셋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과 투블럭 커트 헤어스타일, 노브라로 요약되는 탈여성화된 외모 규범을 요구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탈코르셋은 여성들에게 의식·무의식적으로 강요되고 내면화되어온 모든 팬옵티콘적 남성 감시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여성자결권을 획득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당위와 대의명분에서 벗어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재단하지 않는, 각자의 복잡한 경험이나 개별 특성을 인정하는, 이분법적이고 대립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난,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모순이 공존하는, 잡종적인, 오염된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인지도 모른다. … ‘진짜 페미니즘’이란 마치 어떤 이상적 형태를 상정하고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텅 빈 기표와 같다. … 어쩌면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다만 세연의 ‘붕대 감기’가 세연과 진경 모두에게 예기치 않은 고통과 좌절을 안겨준다고 하더라도 계속될 것임을, 그러니 상처받을 것이 두렵다고 해서 관계 맺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암시한다.


/밑줄

-우정이라는 적금을 필요할 때 찾아 쓰려면 평소에 조금씩이라도 적립을 해뒀어야 했다.

 

-이 거대한 산업의 어디까지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고, 어디서부터가 여성을 아름다움에 억지로 묶어 자유를 빼앗는 일일까. 지현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너무, 웃기잖아요. 이런 것 때문에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웃긴 일들 때문에 사람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그래. 말을 못 해서 그런 거야. 말이라도 하면 좀 나아.

 

-아이는 아직 모른다. 달착지근한 마카롱 몇 개나 갑작스럽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것으로는 괜찮아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는 것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일이 점점 더 겁나는 모험처럼 느껴진다.

 

-둘은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네트워크로 언제나 이어져 있었고, 서로에게 가장 먼저 댓글을 달아주는 사이였다. 서로가 지닌 빛에, 어둠에, 즐거움에, 슬픔에, 한심함에.

 

-내가 삶으로 꽉 차서 폭발해버리지 않게 하려면 나는 나의 어떤 부분을 헐어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얻어낸 공간에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부정적 감정을 채울 수는 없다는 것,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모르고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미움을 집어넣을 수는 도저히 없다는 것, 그게 내가 해낼 수 있었던 최선의 생각이야. 내가 아는 사람들,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들어가면 그 자리는 꽉 차버리는 걸.

 

-진경아, 여자는 항상 세보여야 한다. 늘어져 있지 말고 빠릿빠릿하게 몸을 움직여, 엄마는 네가 약해빠진 여자, 한가하고 할 일 없어 보이는 여자, 가만히 앉아서 눈웃음이나 치는 여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여자는 남자들에게 이용이나 당하고 버려질 뿐이야.

 

-사랑하는 딸. 너는 네가 되렴. 너는 분명히 아주 강하고 당당하고 용감한 사람이 될 거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그걸 응원해줄 거란다. 하지만 엄마는 네가 약한 여자를, 너만큼 당당하지 못한 여자를, 외로움을 자주 느끼는 여자를, 겁이 많고 감정이 풍부해서 자주 우는 여자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를, 결점이 많고 가끔씩 잘못된 선택을 하는 여자를, 그저 평범한 여자를, 그런 이유들로 인해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도 나는 너를 변함없이 사랑할 거란다.

 

-언니, 사람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주는 거 아는데 저는 왜 이렇죠?

 

-함께 싸워준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왜 우리 언니는 이렇게 혼자지. 왜 항상 혼자 병실에 있어. 언니의 고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과적으로 영광이 된다. 인간에게는 왜 말이 있을까. 언제나 말, 말, 말들뿐이다.

 

-시간이 지나야 해. 서로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일에는 시간이 걸려.

…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기다리라고 선배들은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의 시간은 그렇게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고 형은은 생각했다. 형은은 선생님들과는, 선배들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움직이는 사람, 항상 제일 먼저 곁으로 달려가는 사람, 힘을 가진 사람들의 너그러운 시혜 없이도 친구들을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형은의 눈에서는 눈물 대신 깨진 유리 조각이 흘러나와서, 땅에 떨어진 그 조각들을 밟은 사람들이 다쳤다. 자꾸만 그렇게 됐다.

 

-얼마나 꼴 보기 싫겠니. 너는 젊었을 때 나이 든 사람들 보기 좋았니? 나는 아냐. 싫었어. … 그냥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들이 싫었어. 지금 젊은 사람들은 안 그렇겠니?

 

-아무튼 세상은 무서운 곳이니까 여자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연은 어째선지 조금 마음이 편했는데, 그건 ‘여자’라는 말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블라우스 밑 가슴께에도 족쇄처럼 채워져 있어서, 숨이 막히는 게 자신 뿐은 아니라는 생각, 간신히 다른 아이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왜 왕따를 당하는가? 이런 질문에는 ‘그런 이유 따위는 없다’고 대답하는 게 옳다. 누군가를 따돌리는 인간들이 잘못이다. 그런 행위에 이유를 부여해 정당화해 주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예전에 가졌던 얼굴을, 외로움을, 단단하지 못한 마음을, 세연이 혼자 오랫동안 노력해 극복했다고 생각해온 것들을, 여전히 갖고 있는 진경을 보면 편하지 않았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잊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다. 그곳을 떠올리게 하는 진경을 마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다른 무엇도 아닌 미움이라는 사실을, 세연은 잘 알았다.

 

-나는 어른 돼도 그러기 싫은데.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투정 부리고 싶을 때 투정도 부리고 싶은데.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거지같은 걸 어떻게 해? 지금은 모두가 풍족해질 만큼 힘을 나눠 가질 수가 없어. 덜 가진 쪽은 더 가진 쪽을 보면 화가 나기 마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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