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 백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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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실연당한 사람들의 일곱 시 조찬모임> - 백영옥

by grabthecloud 2020.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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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연애 이후 나는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나버린 것 같다. 아니, 분명히 고장이 났다. 사랑하는 동안에 내가 이 사람을 만나려고 그동안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사람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매일 했다. 이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다시 배웠다고, 그 전에 내가 알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확신하는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돌연 그는 이별을 선언했다. 마음이 식었다고 했다.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알고, 사랑의 속도와 크기가 같을 수 없음을 나 역시 안다. 이것에 대하여 원망을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단 것 또한 안다. 하지만 그가 택한 이별의 방식과 시기는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것은 내게 너무 잔인한 이별이었다. 내 사랑이 죽은 그 날 이후 나는 줄곧 ‘오전 일곱 시의 유령’ 상태이다.

 사랑의 시작이 조심스러운 만큼, 마땅히 끝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보다도 더. 하지만 이별의 의미나 그것이 갖는 무게를 하찮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눈곱만큼의 존중도 없이 이별하는 사람들. 그게 상대를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같은 유령의 눈에만 그 상처가 보일 뿐. 한동안 잔나비의 ‘처음 만날 때처럼’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왜 그리 갑자기 떠난다 했어

왜 그리 쉽게 안녕이라 했어

제발 꿈이었으면 그냥 너의 장난이었으면 좋아

이제까지 만남도 너무나 아쉬워

안녕은 그리 쉬운 게 아냐

우리가 처음 만날 때처럼 말야

 

 시작할 때의 ‘안녕’과 끝날 때의 ‘안녕’ 모두 중요하다. 사랑을 하려는 모두가 이 사실을 알면 좋을 텐데. 한때 사랑했던 이 사람이, 어느 순간은 분명히 나의 전부이기도 했던 이 사람이, 실연‘당하’고서도 당장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 사람이 조금은 덜 아프고 덜 괴롭도록. 잠깐만 죽을 것 같다가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만 배려해주면 좋을 텐데. 그래서 이 사람에게 새로운 누군가가 묵묵히 다가오는 소리를 느낄 수 있도록. 나와는 헤어지지만 누군가를 다시 만나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해 유령이 된 나같은 이들이 없도록. 


/밑줄

-존재가 희미해지는 건 실연당한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일까.

 

-상처받은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실연이 주는 고통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칼에 베였거나, 화상을 당했을 때의 선연한 느낌과 맞닿아 있다. 실연은 슬픔이나 절망, 공포 같은 인간의 추상적인 감정들과 다르게 구체적인 통증을 수반함으로써 누군가로부터의 거절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사람은 어느 순간에나 사랑에 빠지고 연애에 실패하고 그러는 거 아닌가? 긴 전쟁 중에도 아이가 태어나잖아요. 사람들은 헤어질 걸 알면서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러니까.”

“우린 죽을 걸 알고도 살아가 잖아요.”

“하지만 당장 넘어져 무릎이 깨진 사람 앞에서 ‘힘내라. 당신의 잠재력을 믿어라! 앞으로 좋은 일만 일어날 거다’라고 말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에요.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희망찬 미래를 얘기하면서 위로하는 게 무슨 소용이죠? …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맛있는 쿠키를 권해주거나, 따듯한 차 한 잔을 끓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외롭다’와 ‘괴롭다’ 사이를 형상화한 조각품들 같았다. 그 조각품에 이름을 붙이면 아마도 ‘외로워서 괴롭고 괴로워서 외롭다’가 되지 않을까.

 

-헤어지자고 말하는 쪽보다, 헤어지자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쪽이 늘 강자다.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무음으로, 다시 벨 소리의 볼륨을 끝까지 올리던 반복의 반복들. 불현 듯 잘못 누른 통화 버튼 때문에 신호음이 울릴 때, 복음 같은 그 소리에 주저앉아 독백하던 날들

 

-사강의 이별은 일 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자주 뜨거워졌다. 가혹한 봄날이었다.

 

-실연은 오래된 미래다.

 

-한낮의 눈부신 태양 속에도 그림자는 숨겨져 있다. 한 시절의 연애가 끝나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연애가 끝나 사랑이 죽고 나면 범죄 현장의 유류품처럼 많은 증거물이 남는다. … 실연 후 남게 되는 이런 물건들의 공통점은 버리기도 힘들고, 가지고 있기는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상처가 자신에게 돌아오고, 자신의 상처가 다른 사람에게 되돌아가며 뾰족했던 상처의 모서리는 무뎌지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이냐고, 변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결국 사랑일 수는 없는 거냐고 묻고 싶어지던 날 밤, 지훈 역시 감기에 걸렸다. … 지훈은 그때 감기약에 취한 듯 내뱉던 현정의 말이 이별의 전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험을 대비하고 불행을 대비한다는 건 애초에 성립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그 순간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때의 일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씩 알아갈 수 있을 뿐이다.

 

-커포티의 소설을 인용하는 게 좋겠어요.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잘생겼는데요? 재수 없는 타입이네.”

“여자들은 저런 타입, 재수 있어 해.”

 

-인간은 슬픈 쪽으로만 평등하다. 인간은 …… 어쩌면, 행복한 쪽으로는 늘 불평등했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버릴 수 없는 게 아닐까.

 

-침묵은 실연의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보편적인 언어였다.

 

-“… 과거엔 아름다웠지만 향기 없이 말라버린 꽃을 바라보는 일이나, 이미 끝난 사랑을 바라보는 일이 뭐가 다르죠?”

 

-스스로의 삶을 관통하는 말은 하기 힘들다. 죄책감은 말의 껍질을 깨뜨리고, 분노와 슬픔은 껍질 안의 말을 짓눌러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타인의 비밀을 듣는다는 건 큰 책임을 요구한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책임, 간직하는 동시에 떠나보내야 하는 책임, 비밀은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그에 짓눌린 무게의 짐을 스스로 덜어놓는다.

 

-“…현정이는 우리 사이에 우연과 낭만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했어요.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따분한 사랑이라고. 하지만 전 연애를 우연히 이루어진 환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연애는 질문이고, 누군가의 일상을 캐묻는 일이고, 취향과 가치관을 집요하게 나누는 일이에요. 전 한순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어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죽도록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 우연히 벌어지는 환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애에요.”

 

-헤어져야 만나고, 만나야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것이 정미도의 선택이자 이 비밀스러운 모임에 대한 답이었다.

 

-실연이 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작용되는 건 아닌 것 같더군요. 우습지만 전 제 꿈에 실연당했으니까요.

 

-세상에 수많은 다른 언어가 존재하고, 번역이 필요한 수많은 사랑과 이별의 언어가 있듯,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기약 없는 사랑에 빠지고, 출구 없는 사랑에 넘어지고, 후회하고, 다시 또 사랑에 빠지는 인간이란 너무 허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는 연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성숙한 어른들의 언어인 침묵의 진짜 의미를 아프게 배워나간다.

 

-모든 연애에는 마지막이 필요하고, 끝내 찍어야 할 마침표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고마워’ 시작하는 사랑보단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힘들다.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현정이 들고 가는 저 사진들처럼. 가끔, 아주 가끔은 지루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진짜 이별을 이해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인 최영미가 <사랑의 시차>에서 말했다. “내가 밤일 때 그는 낮이었다. 그가 낮일 때 나는캄캄한 밤이었다. 그것이 우리 죄의 전부였지.”

 

-시간이 바꾸지 않는 건 없다는 것.

 

-작가의 말 / 헤어져야 만난다. 이 말을 나는 담담한 듯 여러 번 말하곤 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아픈 말인지 안다. 하지만 사랑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해지는 무엇이라면 나는 다시 한 번 말할 수밖에 없다. … 지금도 실연당한 누군가가 울고 있다는 걸 안다. 사랑 때문에 잠 못 드는 충혈된 눈이 흘리는 눈물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시간을 탕진하며 죽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삶을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별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헤어져야 다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 들리지 않던 그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그녀가, 그가, 사랑을 잃은 당신을 향해 시간을 거슬러 천천히 걸어오고 있을지 모른다. 나도, 당신도, 이제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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