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입술이 닿은 자리
본문 바로가기
써 내려간 마음

입술이 닿은 자리

by grabthecloud 2020. 5. 3.
728x90
728x90
BIG

 

 

 티가 나겠지만 결국엔 티가 나지 않게 오빠 옆자리에 앉았어요. 잘못했다가 이상한 선배 옆에 앉을 뻔했지만 위기를 극복하고 오빠 옆자리를 사수한 거죠. 오빠는 항상 그렇듯 모든 사람의 수저와 잔을 챙겨요. 저도 그 옆에서 오빠를 돕죠. 사실은 돕는 척이고 오빠의 손, 아니 손가락, 아니 손톱 끝이라도 닿아볼까해서 괜히 분주하게 오빠 손을 따르는 거죠.
오빠가 웃어요. 그럼 그냥 저도 웃음이 나요. 오빠는 무표정일 때랑 웃을 때의 간극이 큰 사람이잖아요. 무표정일 때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 같고 웃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개구진 사람 같아요. 저 천진한 웃음이 또 오늘 내 하루의 유일한 구원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저는 그냥 따라 웃는 거죠.
 오빠가 잔에 술을 따르고 술을 마신 뒤 경쾌하게 잔을 내려 놓아요. 그 잔을 유심히 봐요. 오빠가 어느 쪽으로 입을 데고 마셨는지 기억하려고요. 지금 저는 괴도 루팡이 되고 싶답니다. 훔치고 싶은 물건은 바로 오빠의 소주잔! 고백하자면 저는 오빠를 볼 때마다 뽀뽀가 하고 싶어요. 우리는 성인 중에 성인, 어른 중에 어른이니까 뽀뽀에서 상당히 진보한 것도 물론 나쁘지 않죠. 하지만 지금은 뽀뽀 선에서 자제합니다.
 오빠가 화장실에 갔고 다른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이제 제가 바빠질 차례에요.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야, 너 뭐해?'라는 소리를 듣지 않도록 몰래 오빠와 저의 소주잔을 바꿉니다. 저의 비밀스런 도둑질이 끝나고 오빠가 와요. 저는 사람들한테 괜히 빨리 잔을 채우고 건배를 하자고 해요.

 

 짠-

 

 오빠의 입술이 닿은 자리에 저도 입술을 데고 소주를 마십니다. 방금 이건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소주였어요.

728x90
728x90
BIG

'써 내려간 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77page의 페이지스 4집 <부치지 않은 편지>  (0) 2020.05.12
흔들리며 피는 꽃신  (0) 2020.05.09
명예 소방관  (0) 2020.05.03
수취인불명  (0) 2020.04.18
고등어 무늬  (0) 2020.04.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