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던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았다. 굳이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이유는 내 퍼스널 컬러를 100% 확신했기 때문이다. 흰 피부와는 거리가 먼, 노란 기가 뿜뿜하는 내가 바로 파워 웜톤이라고 믿고 또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웜톤 안에서도 봄과 가을, 뮤트와 딥 등 세부적인 갈래가 여러 개로 나눠진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까지는 자신이 없어 전문가에게 속 시원히 진단을 받아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는 봄웜일 것이라고 90% 이상 확신하며 괜히 돈을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끝내 버리지 못한 채 홍대로 향했다. 내가 간 곳은 '컬러쏘사이어티 퍼스널컬러'. 홍대역에 내려 걸어서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6만 5천원을 내고 입장한 공간은 생각보다 편안하고 심플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줄 컬러 전문가가 테이블에 앉아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딱 봐도 그녀는 예뻤고, 컬러 전문가답게 화장부터 반지까지 매우 조화로운 외양을 갖추고 있어 신뢰감이 상승했다. 내부는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고 거기서 간단한 설문과 상담을 진행한다. 너무 더웠던 날이라 차가운 매실차를 타주셨다! 그곳에서 화장을 지울 수 있으니 미리 지우고 가지 않아도 된다. 화장을 다 지우고 태초의 모습으로 그녀를 마주했는데, 나만의 색을 찾는 여정 앞에 선 것이 실감났다. 간단한 질문에 응답한 뒤 그녀가 본격적으로 내 얼굴 밑에 드레이프를 대보기 시작했다. 여러 색들이 나의 턱 밑을 스쳐 갔다. 그리고 확실히 내 얼굴을 ‘죽상’으로 만드는 색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색들을 대고 있으면 거울 속의 내가 더욱 더 초라해져 ‘그 천 좀 제발 빨리 떼어 주세요!’라는 외침이 절로 나왔다. 반대로 어떤 색들은 불편함이나 불쾌감 없이 편-안하게 나를 지탱해 주었다. 바로 나의 색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모르고 있었던.
“탁기가 받으시네요,”
의외의 피드백을 여러 번 들으며 나의 퍼스널 컬러를 찾았다. 나는 바로 ‘갈웜 소프트’. 봄웜이 아니라 놀랐다. 봄웜이라 생각하며 29년 동안 어울리지 않게 상큼하고 신선한 척을 하고 있었구나. 생기발랄한 나의 파우치 속 컬러들이 조금 민망해졌다. 하지만 과거는 어쩔 수 없다! 화장품 추천까지 해주셨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소비할 제품들을 나의 색에 맞춰 바꿔보는 수밖에.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나의 톤에 맞는 화장품을 사기 위해 올리브영으로 갔다.
나는 나를 데리고 3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았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색의 사람인지를 내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잘못은 아니나 그냥 그 사실이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멋쩍기도 했다. 앞으로 살면서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될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다면 그때는 나의 전부를 알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알아가고 이렇게 나와 친해지는 과정 자체가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나와 더 많이 놀고, 더 오래 대화하고, 더 자주 눈을 맞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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