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행위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해주는 책이다. 실제로 독서모임 회원들의 평점과 후기도 좋았다. 특히 우리가 ‘쥐며느리’가 아닌 ‘며느리’들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그랬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잠깐 읽고 쓰는 자의 멋에 취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금방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동안 내 글의 글감이 너무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일과 감정에만 치우쳤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전태일부터 세월호까지, 소외된 세상과 그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급되는데 그에 따른 자극인 것 같았다. 어쨌든 좋은 자극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내가 아닌 타른 사람, 개인이 아닌 사회에 대해 써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전선의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내일이면 세월호 6주기가 돌아온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깥 이야기는 세월호다. 우리 모두가 그 세월을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란다.
20.04.09 _ 밝혀지지 않은 이유
그 날 – 이성복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가르치기 위해 시를 공부하는 것이 가끔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이 시도 가르치기 위해 공부한 시였다. 이성복 시인의 시가 가르치기 쉬운 시는 아니다. 이 시 역시 그렇다. 하지만 이 시는 학생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가르쳐야 하는 시다. 시인이 살던 시대의 ‘그날’과 우리 시대의 ‘그날’은 분명 다르면서 결국 같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매우 절망적이다. 나는 절망으로 시작해 절망으로 끝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 내가 사는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특히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서는 오래 아파했다.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나에게 ‘그날’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작된다. 우리는 같이 울고 같이 분노했다. 모두가 자기 일인 것처럼 가슴 아파했고 사실 그건 우리 모두의 일이었다. 소리 내어 통곡하다가 소리 죽여 신음했고 그러다가 다시 통곡했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모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병을 앓았고, 가을이 멀었는데 세상이 온통 국화였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불순한 선동의 목적으로 이용되거나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져 문제의 본질을 가리게 되면서, 이제는 ‘세월호’를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가 된 듯하다. 모두가 조금씩 불편하고 우울한 얘기라며 쉬쉬하고 회피하는 사이에 진실은 더욱 멀어졌다.
사실 나도 누군가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 이 시를 읽고서 문득, 내가 귀머거리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진다. 누군가의 고통스런 신음 소리를 듣고도 애써 모른 척 외면하다가 정말로 들을 귀를 잃어버린 귀머거리. 아직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지금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잡초처럼 솎아 내거나 자신의 하늘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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