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작정한 자의 용기란
쓸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많아진 시대. 그러나 나는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통해서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쓰기’가 가져다주는 이로움도 많겠지만 그 이로움만을 보고 기대기에 글쓰기란 너무나 위태롭다. 나는 그녀를 통해 ‘쓴다’라는 행위가 수반해야 하는 쓰라림과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거의 매일, 그것도 마감시간 안에 약속한 타인에게 글을 보내야만 하는 의무까지 보태진 일을 했다. 그것도 너무 잘, 해냈다. 물론 돈을 받고 이뤄진 독자-작가 간 물질적 거래가 동력이 되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떻게 매일 그렇게 높은 수준의 글을 약속된 분량에 알맞게 차고 넘치도록 쓰실 수 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꾸준하게 놀라웠던 지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이슬아’의 글을 읽고 있으면, 쓰고 싶어 진다. 나에 대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과 공간, 나를 관통한 사건, 그리고 나의 살리고 죽이는 사람들에 대해 쓰고 싶어 진다. 내가 기억하는 것들에 대해, 내가 감각했던 그날의 공기와 분위기에 대해, 내가 마주했던 그 사람의 눈동자에 대해 꺼내놓고 싶어 진다. 활자로서 탈탈 털어놓고 싶어 진다. 마치 나는 작가님 글쓰기 수업의 학생이 된 마냥, ‘책에 소개된 글감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나는 이렇게 쓸 거야’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중간중간 소개되는 실제 학생들의 글도 이런 동기유발에 큰 몫을 담당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개인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서사를 살포시 풀어놓고 싶게끔 하는 것,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매력이다.
두 번째 매력은 ‘아무나 작가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참으로 많은 자질과 능력이 필요하구나, 라는 일종의 좌절감이 피어오른다. 우선 관찰력. 만약 작가님과 똑같은 하루가 내게 주어졌대도 나는 그 하루의 이면을 작가님처럼 포착해낼 자신이 없다. 그리고 문장력. 작가님의 문장은 통통 튄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살아있다. 배열된 위치에서 자신의 생명력을 다하는 문장들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용기. 읽으면서 내가 나에게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 있다. 나는 작가님처럼 쓸 수 있을까? 쓰기란 독자를 전제한다. 쓰는 자는 내 글이 반드시 누군가에게 읽힐 것임을 안다. 그리고 읽는 자가 타인일 때는 자기 검열과 부담감의 정도는 더욱 심하다. 벌거벗은 채로 야외상설무대에 홀로 나서는 느낌이랄까. ‘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까’,부터 시작하여 결국에는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보일까’로 끝난다. 그리고 언제나 원치 않는 오해와 비난의 위험에 처한다. 독자를 향한 쓰기란 이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행위다. 다시 질문. 나는 작가님처럼 쓸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쓰기로 작정한 자의 용기가 느껴진다는 것,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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