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58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돌아온 나를 또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고 있을까. 엄마는 이제 기도 자체가 필요한 것 같았다. 같은 기도문을 수십 번 반복하고 있었다.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쟈 모다야 모다야…………'경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되어 있었다.
"무슨 뜻이야?"
"엄마도 몰라, 알아서는 안 되는 거야."
"알면 안 된다고?”
"우주선에 원숭이를 태운다고 해보자. 우주선의 원리를 원숭이가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원숭이도 우주선의 빨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우주에 갈 수 있잖니. 신의 뜻도 사람은 알 수 없는 거야. 하지만 경을 외면 지옥에 떨어진 사람도 꺼낼 수가 있어."
엄마는 천수경의 한쪽 페이지를 나의 손에 쥐여주었다.
“읽어봐. 아무것도 이해하려 하지 말고.”
엄마는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p.184~5 정한아 심사평
신흥 연구원들의 유입으로 형성된 대전의 전민동은 주민들 간의 생활 격차가 극심한 공간이다. 아이들은 그와 같은 구분에 반발하며 아무것도 묻지 않는 무인 모텔에 몰려가 알몸으로 포르노를 보고, 모두 같이 소주를 마시고 뒹굴거리며 하나의 몸, 하나의 냄새가 된다. 이들은 '다행히'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고, 무성적 존재로서의 희락을 함께 누린다.
친구들과의 우정은 주인공 강이에게 삶의 전부와도 같다. 어른들의 강압, 혹은 무관심에 반발한 강이, 소영, 아람은 함께 가출하기에 이르고, 낯선 도시의 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들의 작고 여린 몸은 때로는 무기로, 때로는 방패로 쓰인다. 하지만 강이와 아람에게 그 기행이 자신을 잊어버리기 위한 것이라면, 소영에게는 자신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 격차는 생활의 격차보다 더 크게 그들의 사이를 벌려놓기 시작한다. 작가는 소녀들의 세계에 드리워진 잔혹한 폭력을 보여준다.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서로를 맹렬하게 증오한다. 알몸으로 하나되어 낄낄대던 아이들이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하고, 옷을 벗겨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면은 마침내 세계의 본모습을 보고 몸을 가린 태초의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불합리와 모순, 그리고 분노를 느끼며 경험하는 잔인한 성장의 일면이다. 강이는 소영과의 사건을 겪으며 아이의 눈으로 본 세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그 일을 매듭짓기 위해 다시 읍내동으로 돌아온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결말이 상투적이라는 데서 조금 아쉬웠다. 결국 해프닝으로 그치고 마는 그와 같은 폭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모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움을 덮고 남을 만큼 이 작품이 지닌 매혹이 크고 강하다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작가 소개에 적힌
'내가 쓴 글이 대신 말해줄 것이다.'
라는 단 한 줄이 너무나도 인상깊었다.
이런 강단은 얼마나 자신을 단련해야 나오는 걸까.
가출 청소년들의 삶과 성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책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나로서는 직업병인 건지, 늘상 '이런 학생이 우리반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로 접근이 되는데, 이 소설은 읽으면서 점점 내가 주인공들 그 자체가 되어 몰입해 읽었다.
어느 순간 강하게 휘몰아쳐 책을 내려놓기 어려웠고 하루만에 완독했다.
심사평 중에서 공감가는 것을 첨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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