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이현석 <덕다이브>, 유연하고 치열한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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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덕다이브>, 유연하고 치열한 삶의 태도

by grabthecloud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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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매일 해도 매일 새로운 스포츠였다. 조금 탄다 싶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자연의 배 속으로 삼켜져 고배를 맛봐야 했다. 한계를 갱신하고 있다는 확신과 끝내 익숙해지지 못하리라는 감각이 평행하여 질주했다.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출렁이는 너울은 이 스포츠에 한번 빠져들면 외골수로 골몰하게 되는 수십가지 이유 중에서도 태경을 사로잡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p.18

바늘을 꿰는 것처럼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가 타지 못할 파도를 피하는 이 기술을 서퍼들은 '덕다이브'라 부른다. 

 

p.131

매번 튕겨져나오기만 했던 불안정한 생활 끝에 이럴 바에는 물에 둥둥 떠다니는 부초로 살겠다면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 순간이기도 했다.

무언가에 미치게 되는 일, 여기가 한계일 거라는 지레짐작을 넘어서보는 일. 그리하여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모습을 갈라지는 근육으로, 유연해진 관절로, 그을리는 살결로 확인하고야 마는 일, 다영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태경은 열정으로 똘똘 뭉쳤던 과거의 자신이 꿈틀거리며 되살아나는 듯했다. 되새겨진 열망은 태경에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려주었다.

그곳은 바다였다.
 

p.140

굽힐 줄 모른 채 오만하기만 하던 사람으로 여겼던 것은 남들의 평가에 휩쓸렸기 때문일 뿐이며, 그가 그렇게보인 까닭은 다만 맞지 않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외려 가혹함에 쓰러져버리는 대신 끝내 회복하여 삶으로복귀한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p.215

얼굴을 가진 형체가 눈앞에 서면 조금은 물러서게 되는 마음. 은은하게 달궈진 납처럼 부드러이 휘어지는 마음.

 

p.227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을 시간을 회복에 이른 것처럼 느껴졌으나 지워지지않는 흉으로 남았을 시간을 어쩌면 한순간도 잊을 수 없어 매 순간 잊으려 했을 시간을 그 시간의 잔해 속에 내가있다는 게, 그런 내가 네 앞에 서 있다는 게, 나의 기만이라는 게, 너와 내가 함께였으나 너를 외면하기만 했던 그곳에서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를 방관자로만 규정하려 해온 나의 기만이라는 게. 태경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기만이 가리려고 했던 사실은 방관 또한 가해였다는점.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보아도, 결코 가려지지 않는 사실은 그것이 비겁하디비겁한 가해였다는 점.

 

p.268

막상 닥치면 어떤 일이든 잘해내리라는 것도 알았지만 정확히 같은 이유로 태경은 어떤 선택지에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선택지 앞에 선 인간이 그저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할 때, 선택은 공허한 단어 이상이 되지 못했다.

 

p.284

지고 싶지 않다는 말.

스스로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는 말.

태경은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우리의 오해가 비록 영원할지라도, 앞으로도 내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였다는 사실만큼은 진실이니까.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

누구도 우리의 자리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우연에 몸을 맡긴 채 바다에 떠 있으면, 그제야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묻게 된다. 파도는 지면서도 지지 않는 법을, 그렇게 그것을 그저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므로,


 소설의 중반을 넘어서면 수면 아래 있던 갈등이나 오해가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점차 흥미진진해진다. 사실 전반부는 내가 서핑이나 발리에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은 지루하게 다가왔고 작가가 하려는 말이 뭘까, 싶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함이나 의문은 점차 해소되었다.

 간호사 직종의 일명 '태움 문화'가 중요한 갈등의 소재로 등장하는데 이는 간호사라는 직업 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 및 직장 문화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방관'도 결국은 '비겁하디 비겁한 가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깊다. 방관자도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꼬리표처럼 떠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주인공이 극복해나간다는 점에서 중심 인물인 태경을 본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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