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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고 인생이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나. 사실 영영 불가능하지 않나. 그저 이 날들을 흐리멍덩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른다. 또 다시 잃어버린 시절로 기억하지 않기 위해 복희와 먹고 얘기하고 걷고 만나는 순간을 이렇게 적는다.
-우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생이 스며드는지.
-고단했던 걔 마음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그래도 하마를 모르는 인생보다 아는 인생이 나는 좋다. 고생은 싫지만 고생이 바꿔놓은 하마의 모습은 싫어할 수 없다. 그가 불행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지 않으려고 애쓴 것을 나는 안다. 스스로를 홀대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낸 것도 안다. 요즘엔 책상에 앉아 일을 하는 하마의 뒷목에서 작은 긍지를 본다. 가까이 있는 사람만 알아챌 정도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힘이다.
-사람들은 동물의 소리를 ‘운다’라고 대충 묶어 말하지만, 유심히 들어보면 절대로 우는 소리가 아니다. 그에겐 다양한 욕망이 있다. 욕망의 정서가 듬뿍 묻어나는 소리를 낸다.
나는 그 소리를 탐이의 말이라고 인지한다. 그에겐 아주 많은 언어가 있다. 누가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저 사실임을 내가 잘 알고 있으므로.
-내일은 하마한테 못 다한 얘기를 해야지. ‘길을 걷다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댄 나에게 사랑을 건네준 사람’이니까 고마움도 죄책감도 말해야지. 내일은 새로운 우리가 되어야지. 탐이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금세 깊은 잠에 든다.
-탐이에 대한 사랑과 그를 기른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그에게 느끼는 동감이 어떤 책임을 준다. 해야 할 일과 바꿔야 할 것들이 커다랗게 놓여있다. 그건 ‘우리’라는 개념을 다시 정립하는 일이다. 혹은 ‘새로운 우리’를 발명하는 일이다.
-‘당신의 세계관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들’
1.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2. 어디로 가고 있는가?
3.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4.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대해 알려 달라.
5. 당신은 최근 무엇을 미워했는가?
6. 무엇이 당신을 울게 하는가?
7. 당신이 좋아하는 시를 적어 달라.
-그 애의 슬픔이 뿜어내는 광채에 놀란 것이었다. 혹시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중요한가.
-어른이 되어 읽은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처럼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는’것이 글쓰기일지도 몰랐다.
-연애란 상대방의 구린 언어를 견디는 일이로구나.
-행복도 불행도 언어와 함께 실체를 획득했다. 인간은 불행의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불행해지는 존재 같았다.
-어떤 부끄러운 짓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다.
-친절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얼굴을 서로 드러냈을 때 비로소 전개되는 우정의 영역에 말이다.
-가끔 보고 싶지만 그냥 그립도록 놔뒀다.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고 싶었다. 매일의 너절한 마음들은 입 밖에 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가 어느새 까먹어버린 뒤, 다시 김을 만나면 정말로 중요하고 재밌고 슬픈 이야기들만 꺼내고 싶었다.
-여러 전전긍긍을 집에 두고 현관을 나선다. 이런저런 역사를 품은 몸, 모리석고 지혜로운 이 몸을 믿으며 걷는다. 몸은 하루의 무수한 가능성들을 어떻게든 맞이하고 감당할 것이다. 마찬가지고 그런 몸을 가진 누군가가 내 쪽으로 걸어오리란 걸 안다. 한참 같이 앉아 있다가 엉덩이를 툭툭 털고 다시 각자 집사람이 될 것도 안다.
-매일 좋은 글이 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좋은 글을 쓸 확률이 높아지기는 했다.
-쉴 새 없이 연결된, 정보가 범람하는, 모두가 서두르는, 이런 세상에서는 무엇과 연결되느냐 보다도 무엇을 차단하느냐가 더 중요한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고단한 사람들 앞에선 웃음소리를 낮춰야 한다. 내 작은 기쁨을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누리는 게 예의일 때도 있다.
-놓치지 않는다는 건 뭘까. 자주 만나거나 손을 포개거나 꽉 껴안아도 진짜로 잡은 느낌 같은 건 들지 않는다. 들더라도 아주 찰나이고 말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계속 태어나고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다르고 날마다 새로운 바람이 분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나쁜 일이 자신을 온통 뒤덮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나쁜 일이 나쁜 일로 끝나지 않도록 애썼다. 우리가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어떤 일에서든 고마운 점을 찾아내는 이들임을 기억했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한다.
내일의 침실에는 하마가 함께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을 한다. 하마가 내 옆에 잇는 건 당연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서운 게 많아도 나는 점점 혼자 잘 자는 사람이 되어온 느낌이다. 그건 하마 덕분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동안의 침실에서 하마는 내 몸과 마음에 여러 용기를 심어주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떠올리면 좋을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용기로 나는 어떤 일에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미안하지 않으면 사과하지 않고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는다. 웃길 떄 웃음을 참지 않듯 가슴이 아플 때 충분히 운다. 하마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얼마나 나약하고도 강인했는지 까먹지 않는 한 쭉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놓치고 나서도 서로에게 배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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