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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간 마음

연습

by grabthecloud 202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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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년생 아빠는 많은 것이 어렵다. 복잡한 스마트폰 사용이 어렵고 예전 같지 않은 몸이 어렵고 딸에게 다정하게 말 거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나는 그런 아빠가 어렵다. 여러 번을 알려줘도 같은 것을 또 다시 알려줘야 하는 것이, 점점 더 느리고 둔해지는 나이가, 아빠와 있을 때의 정적이 어렵다. 아빠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의 삶에서 낙은 무엇일까. 그런 것이 있기는 할까. 사실 나는 아빠를 잘 모른다. 그리고 아빠 역시 딸을 잘 모른다. 그건 아마도 우리의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어느 정도냐면, 아빠는 내가 20살 때부터 6년간 사귀었던 남자친구의 존재를 몰랐다. 굳이 숨긴 것도 아닌데 졸업식에 와서야 '내 딸의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셨다. 친구들은 내가 아빠와 따로 사는 거 아니냐며 의심했지만 우리는 이제껏 계속 한 집에서 함께 살았다
.

  아빠의 최고 애정 표현은 “딸내미-”다. 그것도 기분 좋을 정도의 취기에서만 나온다. 어렸을 때는 <딸내미 + 구구콘 + 용돈> 콤보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좀 크고서 아이스크림은 빠졌다. 내가 여전히 구구콘을 좋아한다는 걸 아빠는 알까. 중학생 때는 이렇게 아빠가 방문을 열고서 ‘딸내미-’하며 종종 있었고 나도 아빠의 그 애정 콤보를 기다렸지만 고등학교 때는 야자와 입시 때문에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대학교 때는 내가 방에 거의 없었다. 지금은 방에 있어도 아빠는 내 방문을 열지 않고 나 역시 아빠의 “딸내미”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 부녀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에 정말 아빠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그냥 낯간지러워 못 하는 거지, 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나도 꼭 한 번 입 밖으로 말해보고 싶은 것 같다. 아직도 아빠에게 안기거나 뽀뽀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나에게 신기한 것을 넘어 경이롭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워졌고 자랐 길래 다 큰 성인이 된 지금도 아빠와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지. 부럽기도 하지만 막상 내가 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부담스럽다. 나는 그런 딸로 살아본 역사가 없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사실이 약간 슬프다.

 한 토크쇼에서 유명한 법의학자가 죽은 사람의 심장이 멈춘 후에도 꽤 오랫동안 청력은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귀에다 대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 하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언제일지 모를 우리 아빠의 임종을 상상해보았다. 과연 아빠는 마지막 순간 나에게 무슨 말을 하실까. 나는 아빠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것과 꼭 닮은 아빠의 귀에다 대고서. 그리고 그 날의 그 순간을 위해 그 전에 몇 번은 미리 소리 내어 말해보는 연습을 해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연습 없이 그 날이 왔다가는 분명 못 할 거니까. 그리고 내가 죽는 날까지 내내 그것을 후회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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