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삶으로 시를 겪고 읽는 일, <인생의 역사>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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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우는 책

삶으로 시를 겪고 읽는 일, <인생의 역사> 신형철

by grabthecloud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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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20년 후에, 지에게 - 최승자

P.66

그러나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그 시인의 성별이 여성이라면 그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강조하는 편이 옳겠다는 생각을 한다. 설사 당사자가 잣니의 고통을 '존재 일반'의 그것으로 규정한다 할지라도, 읽는 사람 쪽에서는 고통에도 성별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대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 사랑 더 강해져,

그대가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리라.

소네트 73 - 윌리엄 셰익스피어

P.81

여하튼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 나는 내 안의 청년에게 이 시를 읽어주면서 삶을 더 사랑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그 청년은 고집이 세고 기억력도 나쁘다.

너희들이 발돋움하며 입술을 맞대고 서로 마실 때

아, 얼마나 그때 기이하게도 마시는 자는 그 행위로부터 멀어져가는가!

두이노의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P.87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 지기 때문이다.

P.89-90

제12비가 후반부에서 릴케는 "아티카의 묘석에 새겨진 인간의 몸짓"을 보라고 권유한다.

(...) 거기 부조된 고대의 연인들에게서 '절제하는' 사랑의 역설적 깊이를 보았다. 그가 말하는 '절제'란 사랑이 탕진되지 않다록 가장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는 기술일 것이다.

(...)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하기로 결심하는데 이를 제2비가의 결론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살며지 어루만지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임을."

(...) 그것이 인간의 사랑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상대방에게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신의 빈자리가 될 수 있을 뿐.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 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 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허공 한줌 - 나희덕

P.104

그 죽음은 분명 자식에 대한 사랑의 좌절로 인한 것이지만, 일종의 움켜쥠을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움켜쥔 채 살고 있는 것인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공 한줌 속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과 집념이 들어 있는 것이지. 삶과 죽음도 결국 그 움켜쥠과 놓아줌의 다른 말이 아닌지...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기러기 - 메리 올리버

P.112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 이 구절의 호소력은 그보다 더 보편적이다. 자신이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책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고질적 습관이 아닌가. 이 시의 도입부는 바로 그런 대다수 독자의 자학적 자의식을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성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

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

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장례식 블루스 - W.H.오든

P.131-2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 고통과 환멸만을 안기는 다른 관계들 속의 나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나를 버텨주기 때문이었다. 단 하나의 분인의 힘으로 여러 다른 분인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는가. 누구도 단 한 사람만 죽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서시 - 한강

P.155

인간 일반이 아니라 나 자신의 죽음은 언제나 '아직은 아닌' 일처럼 생각하며 산다. 본래성이 아닌 일상성의 세계에서, 그러니까 거짓된 망각의 세계 속에서 말이다.

(...) 운명을 만나 그가 내게 행한 일을 돌이켜 생각하게 되는 때는 생의 마지막 순간이지 않을까. 그러니 죽음에 대한 시가 맞을 것이다.

P.157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생의 끝에서야 쓰게 되는 서시 같은 것이므로, 그때야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다시 처음인 듯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러나 그건 너무 늦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미리 써야 하고 매일 써야 한다. 나는 죽는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 시를.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산문시 1 - 신동엽

P.200

그리하여 그들이 만든 법조문은 단 한 문장이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이 법으로 그들이 내리지 못한 결정은 하나도 없었다.

(...) 진정한 유토피아는 이처럼 광부와 농민이 이해 못할 작품이 없을 만큼 그들에게 교육과 시간이 제공되는 사회다.

사람 한평생에 칠십 종이 넘는 벌레와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삼킨다 한다 나도 떨고 있는 별 하나를 뱃속에 삼켰다

생에 대한 각서 - 이성복

P.207

자신감이 좀 붙으면, 예전에 두려워하던 이가 귀찮아지는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무렵이 가장 바쁜 때다. 그러나 그것은 잘되고 있는 게 아니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만 그것을 모른다.

P.208

읽으면 비참해지지만 안 읽으면 비천해진다.

P.210

사실 이성복은 내내 비관적이었다. 그의 비관주의는 '따뜻한 비관주의'다. 여기서 따뜻하다는 것은 달콤하다는 뜻이 아니라 나약하지 않다는 뜻이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약점을 옮기고 다니면 내가 약하다는 증거예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줘야 그 사람을 싫어할 자격이 있어요." 바로 이것이다. 생을 싫어할 자격이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여운이 따뜻한 것이다.

그는 그날 오후에 대해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생각해야 할 것들은 언제나 너무 많다.

(...)

우리는 방에서 점잖게 찻잔을 들어올렸다.

잠시 동안 뭔가 다른 것이 들어왔었던 방에서.

발사체: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 -레이먼드 카버

P.221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이번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한 것을 얻었나?/그렇다./무엇을 원했길래?/이 지상에서, 나를 사랑받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카버는 자신이 겪은 아픔을 '그렇다 하더라도'에 욱여넣고, 그랬지만,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았다고 긍정한다. 우리가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가장 진솔하게 말하는 데 성공한 이 시에서 내가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단 한 글자도 없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봄밤 - 김수영

P.226

대체로 희망과 절망은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는 멀리' 있다. 현실 대부분은 희망도 절망도 아닌 그냥 무명의 시간인 것이다.

P.228

서둘지 말고, 바라지 말고, 당황하지 말라. 이 셋은 자주 엉킨다.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은데, 이룬 것이 너무 없어 당황스러울 때, 그때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그때가 위험한 때다. 빨리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마음에 지면 나를 잃고 꿈은 왜곡된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않는 마음이란 현실 앞에 의연해지려는 마음이다.

나날들은 왜 있는가?

나날들은 우리가 사는 곳.

그것은 오고, 우리를 깨우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그것은 그 속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있는 것:

나날들이 아니라면 우리 어디에서 살 수 있을까?

나날들 - 필립 라킨

P.234

이런 표현의 묘미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답을 상상해 보면 좀더 또력해진다.

'어느 곳에서 사십니까?' '저는 하루하루의 나날들 속에서 삽니다.'


부록 1- 오타쿠의 덕

어느 '윤상 덕후'의 고백

P.254

나는 그를 닮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는 내가 가장 덜 싫어하는 '나'들 중 하나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우리가 자신의 전부를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 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 덕질은 우리에게 그런 덕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자꾸만 나를 혐오하게 만드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면서, 이 세계와 맞서고 있다.

부록 2 - 누구도 완전히 절망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

코로나 시대의 사랑

P.257

코로나 이후 사랑과 연애는 달라졌는가 여전한가. 아니면 더 여전해지는 방식으로만 달라졌는가.

부록 3 - 실패한 사랑의 역사를 헤치고

최승자의 90년대를 생각하며

세월은 내게 뭉텅뭉텅

똥덩이나 던져주면서

똥이나 먹고 살라면서

세월은 마구잡이로 그냥,

내 앞에서 내 뒤에서

내 정신과 육체의 한가운데서,

저 불변의 세월은

흘러가지도 못하는 저 세월은

내게 똥이나 먹이면서

나를 무자비하게 그냥 살려두면서

-<미망 혹은 비방 1> 최승자

P.274-5

존재론적 터전으로서의, 사랑의 대상. 그런데 그런 터전이 외부에 꼭 있어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 "개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느끼는 강렬한 취약함이라는 감각"때문이다. (...) 취약함이 정착감을 갈구하고 정착감이 취약함을 해결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더 정확히는 사랑의 필요성을 배운다.

타자애과 자기애는 동전의 양면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데 성공한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P.288

나는 21세기의 최승자에 대해서도 그가 출간한 세 권의 시집보다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안부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러니까 그가 사랑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 말이다. 시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사랑을 얻었으면 그만이다. 최승자는 언제나 살기 위해 썼지 쓰기 위해 살지 않았으니까.

부록 4 - 오디세우스와 아브라함 사이에서

황동규의 최근 시

P.296

결말에 이르러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지적한다음 이렇게 덧붙인다. "'조금'이라고 했지만 인간의 변화는 그 '조금'이 사실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 거듭남은 '내가 아닌' 혹은 '나와 다른' 것과의 만남을 통해 겨우 일어나는, 그야말로 사건이다. 그렇다면 그 '아님'과 '다름'의 정도가 곧 거듭남의 정도와 비례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여전히 타자와의 조우야말로 우리를 가장 결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믿는다.

부록 5 - 돌봄, 조금 먼저 사는 일에 대하여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P.3111-2

그는 현재로 오는 과거를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에 도착하라 현재를 정성껏 살아가기도 해야 하는 것이다. (...)

현재가 미래에 도달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곧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하는 삶을 산다.

P.317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더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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