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port" 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꿈 속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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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내려간 마음

꿈 속 얼굴

by grabthecloud 202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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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우리가 계획했던 여행을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만약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넘어가는 그 계절에 계획했던 여행을 예정대로 갔다면 말이야. 혹시 우리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해. 자려고 누우면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내 방 천장에는 별자리 대신 그런 생각들이 벅벅 그어지는데 좀처럼 멈출 수가 없네. 그렇게 잠들면 어김없이 난 네 꿈을 꿔. 정확히는 계획했던 대로 여행을 떠난 ‘우리’의 꿈이지. 꿈속에서 너는 마냥 행복한 얼굴인데 그 옆에서 나는 늘 무표정이야. 어딘가 슬픈 무표정. 근데 너는 내 얼굴이 왜 그런지 꿈속에서도 절대 묻지 않더라. 너는 그냥, 계속, 마냥, 즐거워. 나는 내내 생리통을 앓고 있는 표정이고. 나는 요즘 바보 같은 생각을 하다가 이렇게 바보 같은 꿈을 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내 기분은 아주 엉망이고 매스껍지. 꿈속에서의 내 표정처럼 하루를 시작하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면 나는 누워서 천장에 또 그 바보 같은 별자리를 그리는 거야. 그리다가, 잠들지.

 

 참 이상한 건 말이야. 꿈은 대개가 일어나면 흐릿해지고 잊혀지기 마련인데, 여러 번 반복해 꿔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꿈속에서 내 얼굴이 너무 선명해. 내 옆에 있는 너는 신경 쓰지도 않던 내 표정 말이야. 내 표정을 읽고서 마음에 담아두고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이유를 생각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이나 꿈속이나 나밖에 없네. 어쨌든 그래서 오늘은 바보 같은 생각 대신에 좀 다른 생각을 해보았어. 우리가 계획했던 여행을 갔어도 우리의 결말이 달라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 언젠가부터 끝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지. 여행에서 얼마나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든지 간에 결국 똑같았을 거야. 그걸 꿈속에 나는 알고 있었나봐. 그래서 그렇게 바라던 여행을 가서도 좋지 않았나봐. 혹은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내 무의식의 반영일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의지 혹은 무의지로 계속 하던 바보 같은 생각의 결론을 냈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다.’

 

 나는 이제 좀 더 나를 돌봐주려고 해. 더 자주 거울을 보고 내 표정과 기분을 살피려고 해. 나에게 해로운 것을 멀리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을 곁에 두면서 나는 조금씩 내 일상을 복구해나가려고 해. 나의 슬픔부터 기쁨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정확히 사랑해 줄 거야. 옆에 있는 너는 몰랐거나, 모른 척 했거나, 절대 알 수 없었던 나의 모든 것들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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